‘폭포의 전시장’ 내연산 12폭포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에 자리 잡은 내연산(710m) 자락을 굽이굽이 감돌며 8㎞가량 흘러내리는 골짜기가 청하골이다. 향로봉(930m) 등 준봉들이 반달모양으로 싸여 있는 청하골은 여느 심산유곡 못지않게 깊고 그윽하다. 빼어난 풍광으로 평일과 주말 구별 없이 등산객과 탐방객들로 북적인다. 천혜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그 사이 계곡에 장쾌하게 자리잡은 12개 폭포 덕분이다. ‘폭포의 전시장’이라 할 정도로 크기와 형태도 제각각이다.
맨 아래 상생폭포에서 최상단의 시명폭포에 이르기까지 약 7㎞의 계곡에 늘어서 있다. 폭포의 높이는 5∼30m에 이른다. 7폭포인 연산폭포까지는 대체로 붙어 있다. 다녀오는 데 2시간(왕복 약 6㎞)가량 걸린다. 대부분 탐방객은 이곳까지 찾는다. 등산로가 완만하고 잘 정비돼 있어 어린아이나 노인들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하지만 비경(秘境)은 그 이후에 펼쳐진다. 폭포간 거리가 먼 데다 길이 가파르고 거칠어 초보 등산객에게는 무리일 수 있다. 특히 제11폭포인 실폭포는 다소 위험한 구간을 지나야 하고 길도 제대로 없어 계곡의 바위를 길 삼아 찾아가야 한다. 웬만한 산객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름과 달리 폭포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장쾌한 물줄기를 쏟아낸다. 그 앞에 서면 가슴은 뻥 뚫리고 감동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입구에서 물길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1.5㎞쯤 오르면 제1폭포인 상생폭포가 반긴다. 두 개의 물줄기가 검푸른 소로 뛰어든다. 우람하지는 않지만 양옆으로 나란히 떨어지는 모양이 단아하다. 이어 보현폭포(제2폭포) 삼보폭포(제3폭포) 잠룡폭포(제4폭포) 무봉폭포(제5폭포)가 잇따라 나타난다. 잠룡폭포 주변 골짜기는 영화 ‘남부군’이 촬영된 곳이다.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 모인 남부군 대원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발가벗고 목욕하는 장면이다.
관음폭포(제6폭포)와 연산폭포(제7폭포)의 경관은 빼어나다. 칼로 자른 것처럼 반듯한 암벽 사이로 두 줄기 폭포수가 쏟아지는 관음폭포를 보노라면 폭포수의 냉기에 온몸이 서늘해진다. 주변에는 선일대 등 천인단애가 둘러 있고, 폭포수가 만들어 놓은 못 옆에는 커다란 관음굴이 뚫려 있다.
관음폭포 위에 걸린 구름다리를 건너면 높이 30m의 연산폭포의 위용이 눈을 사로잡는다. 청하골 폭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학소대로 내리꽂히는 커다란 물줄기가 우렁차다.
관음폭포에서 다시 15분가량 올라가면 제8폭포인 은폭(隱瀑)을 만나게 된다. 여성의 음부를 닮아 음폭이라 하다가 상스럽다 해 은폭으로 바뀌었다는 설과 용이 숨어 살았다고 해 숨은용치라 부른 것에서 근거해 은폭이 됐다는 얘기가 있다. 은폭포까지는 왕복 7㎞ 정도 된다. 8개의 폭포만으로도 청하골의 진면목을 실감할 수가 있다.
이곳 위쪽으로도 호랑이가 나타나 바위에 엎드려 쉬고 있었다는 제1복호폭 제2복호폭이 이어진다. 두 폭포는 등산로에서 계곡쪽으로 80m 정도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실폭포와 제12폭포인 시명폭포는 다른 물줄기에 자리잡고 있다. 시명리로 가기 전 오른쪽 잘피골로 300m가량 들어서면 30여m 높이에서 실오라기 같은 폭포가 떨어진다. 50여m 지점에 보이는 작은 폭포가 아니다. 산비탈길을 지나 계곡에 이리저리 널브러진 바위를 딛고 물길을 건너야 만날 수 있다. 시명폭포는 등산로에서 계곡까지 70여m를 내려간 뒤 다시 하류로 70여m를 더 가야 닿는다.
호젓한 ‘청량제’ 하옥계곡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와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 사이에 파묻힌 하옥리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정겨움을 안겨준다. 내연산 향로봉 줄기 사이로 12㎞나 이어지는 협곡은 맑디맑은 옥계수로 세상사에 찌든 마음을 힐링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관광객들로 들썩이는 청하골과 달리 하옥계곡은 호젓하다. 청하골처럼 화려한 12폭포를 품지 않았지만 은은하면서도 깊은 맛을 풍긴다. 때묻지 않은 자연미가 가장 큰 매력이다.
하옥교 주변은 둔세동(遁世洞)이라 불려왔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신라 시대에는 400여 가구가 이 깊은 산골짝으로 숨어들어 살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오래 전에 폐허로 변했다. 둔세동을 지나 말머리 모양의 산으로 둘러싸인 마두밭(馬頭田)으로 접어든다. 하옥교로부터 3.4㎞, 상옥 삼거리에서 7.2㎞ 남짓한 지점에 마두교가 걸려 있다.
이곳에서 원시적인 골짜기 덕골의 비밀스러운 품으로 들어간다. 강원도 두메산골보다, 명산 지리산의 깊숙한 골짜기보다 더 매력적이다. 덕골의 뒷골에는 1970년대 중반까지 다섯 가구의 화전민들이 살았다는 뒤터라는 마을 터가 있고, 앞골에는 아흔아홉 칸 고대광실을 자랑하던 황정마을이 있었다지만 흔적도 남지 않았다. 엽전을 찍었다는 말도 전해지지만 알 수 없다.
피서객들도 길가에 붙은 하옥계곡 언저리에서만 맴돌 뿐, 덕골까지 들어가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덕골은 신비로운 속살을 감추어왔다. 각양각색의 바위 사이로 구르는 청정 옥수에 감탄하면서 15분 남짓 계곡 길을 헤치면 두 번째 지류가 갈라진다. 이 곳에서 10분쯤 나아가면 와폭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스듬히 흐르는 폭포 자체보다는 빽빽한 원시림으로 뒤덮인 협곡 좌우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험상궂은 암벽이 위압적이다.
■여행메모
KTX·항공… 빠르고 편한 대중교통 청하골 입구에 더덕구이 등 식당 즐비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청하골에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대구 도동분기점에서 익산포항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대련 나들목에서 28번 국도와 7번 국도를 이용해 북쪽으로 내달리다 송라면소재지에서 보경사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주차료와 관람료는 올들어 올랐다. 소형 4000원, 대형 8000원. 입장료는 어른 3500원, 청소년·군인 1700원, 어린이는 무료다. 연산폭포까지는 6㎞ 정도. 입구에 식당과 민박을 겸한 곳이 많다. 매표소 앞 연산온천파크를 이용하면 트레킹 후 피로를 풀기에 좋다. 청하골 입구에 식당가가 형성돼 있다. 더덕구이, 산채비빔밥, 손칼국수, 콩요리 등을 내는 식당 30여곳이 자리하고 있다.
하옥계곡은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에서 빠져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을 지나 진보에서 청송 방면으로 31번 국도로 갈아탄 뒤 68번 국지도를 이용 상옥삼거리 방향으로 가면된다. 안동에서 영덕 방면 34번 국도로 달리다가 신양리에서 69번 국지도를 이용해 옥계를 거쳐도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지난해 개통된 KTX를 타거나 최근 재취항한 항공편을 이용하면 편하고 빠르게 다녀올 수 있다. KTX 서울역에서 포항역까지 2시간 30분 걸린다. 서울역에서 오전 5시45분부터 하루 10편이 운행되고, 포항역에서 막차는 오후 9시50분 출발한다. 포항에서 청하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하옥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포항=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