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상의 빛, 그리스도 만나 마음의 빛 얻어

입력 2016-07-19 20:48
실명의 아픔을 극복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재활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기현씨(가운데)가 최근 서울 용산구 후암로 절제회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세대학교 후배들과 함께 찬양을 하고 있다.

그는 ‘세상의 빛’은 잃었지만 ‘마음의 빛’을 얻었다. 의료사고로 중도 실명한 김기현(41·송탄중앙침례교회)씨는 갑자기 불어 닥친 인생의 광포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죽음을 생각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미국 보스턴대학과 아이오와대학에서 재활상담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최근 귀국한 그는 자신이 만난 진리의 빛을 절망과 고통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길 소망했다.

지난주 서울 용산구 후암로 절제회관에서 만난 그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는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다. “사람들은 시각장애가 저의 십자가라고 생각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시각장애는 저에게 은혜이고 가문의 축복입니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가족과 친구들의 영혼구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그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전국 석차 1% 안에 드는 수재였다. 1994년 외교관의 꿈을 안고 연세대에 특차로 입학한 후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6월 턱 부정교합 수술을 받으면서 운명이 180도 바뀌었다. 구강 내 과다출혈로 기도가 막혀 약 3분간 질식 상태에 빠지는 의료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온몸을 끈으로 묶어놓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앞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했다. 가족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눈물겨운 재활 의지로 운동신경이 회복됐다. 빨대를 입술로 물고 음료를 스스로 마실 수 있던 날 어머니는 우셨다. 30m가 채 되지 않는 병원 복도를 걷는 데 40여분이 걸렸다. 다행히 운동신경은 차츰 회복됐다. 그러나 시력은 영영 회복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만큼 인생도 끝난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8개월 만에 퇴원했지만 머릿속엔 ‘어떻게 죽을까’란 생각만 맴돌았다. 죽어버리면 고통이 없을 것 같고 슬프지도 않으며 자유로울 것 같았다. “비관적인 생각에 15층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어요. 그 순간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보다 더 힘든 지옥에 간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어요. 당시엔 신앙이 없었지만 나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신 분은 분명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죽을 용기로 다시 한번 살기로 결심했다. ‘김기현은 이미 사고로 죽었다.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나는 거야!’ 복학 후 2년이 지난 2000년 봄, 김정주 교수의 ‘성서와 기독교’ 수업을 들으면서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는 말씀을 듣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 실명으로 어둠 속에 있던 그가 빛 되신 그리스도를 만나 영적인 눈을 뜨게 된 것이다.

2003년 9월부터 한국맹인교회를 나갔다. 첫날 그를 집까지 데려다준 청년이 남편 박관용(47)씨다. “‘가족 중에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이 있는 사람,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신앙인, 자상하고 가정적인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 왔어요. 하나님은 기도를 그대로 들어주셨어요. 시아버지는 장애인학교 인천 혜광학교 교감선생님이셨고 어머니는 저시력의 시각장애인이셨어요. 시부모는 아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아내를 돕고 뒷바라지하도록 권유해주셨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요

2005년 한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며 요리를 배웠고, 아내의 미국 유학을 위해 8년이나 다니던 회사를 미련 없이 그만두고 2006년 아내의 유학길에 동행했다. 그녀 역시 남편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 사이에 아들 예승(9)이가 있다.

“아들을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예승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있어요. 예승이를 낳기 전에는 단어로만 존재하던 ‘마음의 눈’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마음의 눈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대구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이제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돕기 위한 비전을 향해 하나님이 주신 힘과 지혜로 하루하루 걸음마를 뗀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