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동섭 <8> 총선 잇단 좌절… “남은 생애 태권도로 복음 전하자”

입력 2016-07-19 20:43
국민의당 이동섭 의원이 2003년 6월 서울 노원구 서울산업대에서 개최된 ‘2003 할렐루야 미션컵 전국태권도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08년 4월 18일. 총선 전날이었다. 오전에 뱃속이 쓰렸다.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달려갔다. “위 괴사증세가 있습니다. 수술하셔야겠습니다.” 선거 날 수술실에 들어갔다. ‘아,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데….’ 수술대에 누워 있으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오후 6시, 수술을 마치고 깨어나니 민주당의 완패 소식이 들려왔다. 공천도 못 받은 상태에서 사무실까지 빌려주며 적극 밀었던 같은 당 후보마저 낙선했다. 참담했다. 꼼짝도 못한 상태에서 피눈물이 났다. ‘그래, 인간의 생사화복은 모두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이제야 깨닫다니….’

총선 후 정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나 이제 정치 그만해야겠어.” 아내는 얼굴색이 밝아지며 너무 행복해했다. 정치를 한다며 지난 10년간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갔던 아내 앞에서 나는 죄인이었다. 아내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예배시간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마치 수도꼭지에서 콸콸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났다. 기도를 해도, 찬양을 해도, 말씀을 들어도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항상 손수건을 갖고 다니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마 국회의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아내와 가족, 나를 위해 힘쓴 당원들, 교회 성도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은 생애를 태권도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겠다. 태권도라는 문화유산을 통해 국위를 높이고 선교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자.’ 그동안 나는 정치인으로 활동을 했지만 태권도를 통한 선교에도 힘을 써왔다. 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을 때의 일이다. 유재필 담임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올림픽에 태권도 선교단을 파송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목사님은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다. 박백희 장로, 조영배 부회장, 김희도 사무총장 등과 태권도 선교팀 100여명을 꾸려 시드니로 향했다. 각국에서 온 관광객과 선수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며 선교활동을 했는데 인기가 대단했다. 귀국하자마자 다시 유 목사님께 달려갔다.

“목사님, 세계태권도선교협회를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기 위해선 사단법인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나 태권도계, 교계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태동된 게 ㈔세계태권도선교협회다. 명예총재에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님, 총재에는 영적 아버지인 유재필 목사님을 모셨다. 나는 상임회장으로 16개 시도협회를 조직하고 시·군·구에 지회를 세웠다. 세계 39개국에 63명의 태권도 선교사를 파송했다.

2008년은 시련의 시기였지만 한편으로는 감사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해 6월 28일 나는 순복음노원교회 장로로 장립됐다. 남성으로는 유일하게 전도왕을 받았을 정도로 많은 성도를 주님 앞으로 인도했다.

장로로 장립 받던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수많은 성도 앞에서 목사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으셨다. “주여, 우리 이동섭 장로를 귀히 쓰시고….” 유 목사님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세상적인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내려놓았다.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됐다. 그간의 교만을 회개했는데 성령님이 뜨겁게 임재 하셨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