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떡’이 된 이우환

입력 2016-07-19 18:20 수정 2016-07-26 18:54

“한국의 미술가. 모노하(もの派)의 대표 작가. 점찍고 돈버는 할아버지.”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우환 사전이다. 경남 함안 출신이니 ‘한국의 미술가’ 맞다. 다만 무대는 일본이고, 예술가로는 드물게 창작과 비평 양쪽에서 공들여 탑을 쌓았다. ‘모노하’는 돌, 나무 등 자연 상태의 물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 경향을 말한다. 그가 비조다. ‘점찍고 돈버는 할아버지’는 캔버스에 굵은 점 하나를 떨어뜨리는 특유의 화풍을 비꼰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우환은 그냥 유명 화가가 아니다. 백남준 이후 가장 국제적 수준에 도달한 작가다. 굳이 비교하자면 ‘노벨미술상’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 무엇으로 증명하느냐? 그를 대하는 세계 미술계의 태도, 즉 전시 수준으로 말할 수 있다.

뉴욕의 자존심이자 거장들의 무대인 구겐하임미술관이 2010년에 그를 초대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건물에 고유 브랜드인 모노하의 돌덩이와 철판, 그리고 점과 선의 동양적 미니멀리즘 작품을 전시해 찬사를 이끌어냈다. 2014년에는 베르사유궁전이 그에게 거대한 정원을 내놨다. 미술계는 이 압도적인 공간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숨죽이며 주목했다. 역시 이우환이었다. 승부처는 거대한 철판 아치. ‘쇠’라는 현대적 물성으로 역사적 장소와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일본 나오시마에 가면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고, 국내 여러 지자체에서는 한때 ‘이우환’ 이름 석 자를 먼저 차지하려 쟁탈전을 벌였을 정도다. 정부는 드물게 생존 작가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인증했고, 민간에서도 최고의 권위인 호암상으로 축하했다.

이런 국가대표급 스타 이우환이 요즘 초라하고 옹색한 행색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위작 소동의 중심에 서면서 포퓰리즘의 오물을 잔뜩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구겐하임이나 베르사유궁 앞에서 보여주던 그 우아한 아우라는 사라진 채 벙벙한 청바지를 입고 버럭 신경질을 내는 노인만 남아 있다. 추락하는 것은 정녕 날개가 없는 것인지,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나는 소란스러운 위작 시비에 끼어들고 싶지 않을 뿐더러 누가 옳은지 도무지 모르겠다. ‘진짜 내 작품’이라는 작가의 말이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가짜라는 증거를 내놓는 경찰이 진짜 같기도 하다. 감정 수단이나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뭐라 할 사안이 아니니, 그저 하루빨리 사태가 마무리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운한 것은 작가를 대하는 사회 일반의 태도다. 이우환이 경찰서를 들락거리긴 해도 위작을 만든 당사자는 아니다. 신경숙처럼 직접 베낀 것도, 조영남처럼 대작을 지시한 것도, 정명훈처럼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경찰이 범인을 조사하면서 작가의 판단을 구하게 됐고, 작가는 실물을 보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경찰이 수사 방향과 다르다고 해서 작가를 망신 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때문에 이우환은 참고인 신분에 불과한데도 여론에서 거의 잡범 취급을 받고 있다. 본인 말대로 ‘떡’이 된 것이다. 경찰은 과학수사의 결과로 재판에서 위작을 입증하고, 작가의 의견은 하나의 증거자료로 첨부하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작가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진술하는 것 같다는 식의 언급은 참으로 무례한 일이다.

이우환 화백에게도 고언을 드리고 싶다. 시장은 짧고 예술은 길다. 모노하를 주창하던 그 정연한 논리로 대결하든지, 아니면 침묵이 낫다. 화실을 떠난 작품은 더 이상 슬하의 자식이 아니다. 또 하나, 작가라는 신분은 고귀하지만 위작스캔들 아래서는 어쩔 수 없이 이해관계의 한 축으로 여긴다는 사실도 유념했으면 좋겠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 인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