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매는 그제야 날카로움을 풀었다. 1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로열트룬 골프코스에서 막을 내린 제145회 ‘디 오픈(The Open)’. 승자는 우승컵 ‘클래럿 저그’를 들고 18번홀을 한바퀴 돈 뒤 그린사이드 벙커에 앉았다. 188㎝ 큰 키의 스웨덴인, 헨릭 스텐손(40)은 1000년 전 북해를 건너 이 곳을 정복했던 바이킹 조상들처럼 글래스고 남쪽 바닷가에 서 있었다.
4일 동안 스텐손은 무자비할 정도로 차분했고 냉혹할 정도로 냉정했다. 단 한번도 그의 손에 드라이버가 들린 적이 없었다. 햇빛이 들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여름의 더위가 밀려들었다 급작스레 냉기가 몰려와 겨울로 변하는 코스, 강풍이 불어 어디로 공이 나갈지 알 수가 없고, 두더지굴처럼 파여진 항아리벙커, 억새풀처럼 뻣뻣한 러프가 있는 곳. 그래도 그는 150명의 참가선수 가운데 누구보다 똑바로 공을 쳤다.
‘스푼(Spoon).’ 마치 숟가락처럼 공을 떠낸다고 해서 3번우드를 부르는 별칭이다. 스텐손의 스푼은 브리티시 오픈을 지배했다. 티샷은 물론, 파5 세컨드샷에서도 능수능란하게 스푼을 휘둘렀다. 무자비한 자연을 넘어서려 하지 않고, 자연에 완전히 순응했다.
비거리를 늘리는 대신 정확성으로 승부를 걸었다. 경기 내내 최고 시속 50㎞, 초속 14m의 바람이 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만 버디를 10개나 해냈고, 최종 스코어 20언더파로 미국의 필 미컬슨(46)을 3타차로 따돌렸다. 한마디로 ‘인생 경기’였다. 메이저대회 한 라운드 최저타 타이기록(63타), 메이저대회 4라운드 합계 최저타 타이기록은 물론, 디오픈 사상 최저타 기록을 달성했다.
2001년 유러피안(EPGA) 투어에 데뷔해 첫 해 우승을 맛 본 스텐손은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통산 15승을 따냈지만 유독 메이저대회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디 오픈에서 우승하며 만40세 103일 만이자 42번째 메이저대회 출전만에 첫 메이저 타이틀을 품에 안게 됐다.
이번 대회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무조건 자연에 저항했다가 쓸쓸히 퇴장당한 골퍼가 많았다. US오픈 우승자 더스틴 존슨(32·미국·세계랭킹 3위)은 ‘기찻길(The Railway)’이란 애칭이 붙은 11번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해 무너졌다. 로리 매킬로이(27·북아일랜드·세계랭킹 4위)도 3라운드 16번홀에서 친 3번 우드가 슬라이스를 내자, 화를 참지 못하고 클럽을 두동강 내버렸다. 세계랭킹 1위 데이는 3라운드 후반에 보기 4개를 범하며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스텐손은 우승 연설에서 “우리는 끝까지 두 마리 경마처럼 뜨거운 경주를 펼쳤다”며 맨 먼저 미컬슨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의 스코어는 3위(6언더파)와 10타 이상 차이가 나는 압도적 성적이었다. 팬들은 1977년 바로 옆 턴베리에서 열린 136회 디오픈에서의 톰 왓슨과 잭 니클라우스의 대결을 떠올렸다. 스텐손은 3년전인 2013년 대회에서 똑같이 마지막 라운드를 펴쳐 미컬슨에게 졌던 아쉬움의 기억도 깨끗하게 지웠다.
원래 왼손잡이지만, 오른손잡이 골퍼가 됐다. 처음은 거칠 게 없었다. PGA 투어에서 2007년 악센추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2009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등을 휩쓸며 일약 최정상급 선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2010년 후원사와의 소송과 부상으로 긴 슬럼프에 빠졌고, 한때 세계랭킹이 꼴찌 수준인 230위까지 추락했다. 힘든 기간 그를 격려해준 사람이 바로 아내 엠마였다. 엠마는 1997년 친구 소개로 당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골프팀 선수였던 엠마를 만났다. 사랑에 빠져 엠마가 소속된 골프팀 헤드코치까지 맡을 정도였다. 그 때 두 사람은 ‘우리가 10년 간 다른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결혼하자’고 약속했고, 2006년 부부가 됐다.
스텐손은 골프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엠마는 골프가 얼마나 어려운 스포츠인지 알고 있다”고 했다. 남편의 경기에는 항상 아내와 아들딸이 경기를 지켜본다. 스텐손은 이번 대회 마지막 홀 버디를 성공한 뒤 이내 엠마를 찾았고, 두 사람은 우승과 감동의 키스를 나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숟가락’으로 디 오픈을 지배하다
입력 2016-07-1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