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종차별과 흑백갈등은 뿌리가 깊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8년째 권력을 잡고 있지만 흑백갈등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그치지 않는다. 비무장 흑인들이 지난 5일(현지시간)과 6일 루이지애나 배턴루지와 미네소타 팰컨하이츠에서 백인경찰의 총에 맞고, 이에 분노한 흑인이 지난 7일 텍사스주 댈러스와 17일 배턴루지에서 백인경찰을 저격한 사건은 흑백갈등이 사회통합을 저해할 만큼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 중 흑백갈등이 오히려 심화됐다는 여론조사는 역설적이다. 그의 임기와 함께 밀어닥친 경제위기와 불평등이 흑인의 박탈감을 심화시켰다. 가난의 대물림이 흑인가정에 더 많다. 흑인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차별에 노출되거나 공권력의 부당한 대우를 일찌감치 경험한다.
유치원부터 차별받는 흑인
미 교육부는 2014년 처음으로 인종별 유치원생의 정학 실태를 조사했다. 교사에게 대들거나 아이들끼리 싸우는 등 다양한 이유로 징계받아 정학처분을 받은 아이들의 인종별 비율을 보니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2학년도 유치원에 등록한 백인학생의 비율은 40%, 흑인학생의 비율은 18%로 백인 비중이 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정학을 받은 학생은 절반 가까운 48%가 흑인이었다. 백인학생은 25%에 불과했다.
올해 미 교육부가 같은 조사를 내놨는데 흑백 간 정학 비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3∼2014학년도 유치원 학생 중 정학을 받은 흑인의 비율은 백인보다 3.6배 높았다. 특히 전체 유치원 여학생 5명 중 1명(20%)이 흑인이었지만 정학받은 여자아이 중 절반(50%)이 흑인이었다.
사소한 이유로 학교에서 수갑을 차거나 경찰서에 연행되는 흑인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미시간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7세 남자아이 케이든에게 경찰이 수갑을 채웠다. 케이든이 산만하다고 교사가 신고한 것이다. 케이든은 학교가 파할 때까지 복도에서 혼자 수갑을 차고 있었다. 케이든의 어머니 크리스탈은 아들이 손을 등 뒤로 한 채 수갑 찬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2012년 5월 조지아에서는 6세 흑인 여아 샐러시아가 교장실에서 쟁반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체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샐러시아에게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연행했다. 아이의 혐의는 기물파손과 잠재적 폭력이었다. 아버지 존슨은 “학교가 어린 꼬마 하나 달래지 못해 경찰에 신고한 것도 어이가 없고, 경찰이 딸에게 수갑을 채웠다는 건 더욱 기가 막히다”고 분개했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의 대응이 지나쳤다는 여론이 일자 경찰은 “아이를 보호하려고 수갑을 채웠다”고 해명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갈등 키워
경제적 격차는 흑백갈등을 더욱 키웠다. 브랜다이스대학이 부채를 제외한 가구별 재산 추이를 조사한 결과 흑인과 백인의 재산은 25년 만에 3배 가까이 벌어졌다. 조사대상 가구의 흑백 간 재산 격차는 1984년 8만5000달러에서 2009년 23만6500달러로 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밀어닥친 금융위기와 경기후퇴는 가난한 흑인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줬다. 이후 2년 새 흑인의 재산은 평균 53% 줄었다. 흑인의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치솟았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가구가 부지기수로 늘었다.
가구별 소득격차도 커졌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백인과 흑인의 가구별 소득격차가 1967년 2만 달러였으나 2014년에는 2만8000달러로 벌어졌다.
가난의 대물림은 빈곤으로 내모는 흑인아이를 증가시켰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백인아이 중 빈곤가정 출신은 10명 중 1명꼴이었다. 그러나 흑인아이 중 빈곤가정 출신은 3명 중 1명꼴이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자 흑백갈등도 깊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2008년에는 ‘흑인과 백인과의 사이가 좋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조사대상의 68%였으나 8년 만에 이 반응은 47%로 줄었다.
오바마는 갈등 해소에 기여했나
퓨리서치센터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조사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 재임 중 흑백갈등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4%에 불과했다.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는 반응이 28%였고, ‘더 악화됐다’는 평가가 25%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이 흑백갈등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흑인 중 51%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나머지 49%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백인의 반응은 더 냉소적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흑백갈등이 심해졌다’는 백인의 반응은 32%로, ‘흑백갈등이 약해졌다’는 반응(28%)보다 많았다.
흑백갈등을 바라보는 시각과 처방도 흑백 간 달랐다. 흑인의 압도적 다수(88%)는 ‘미국이 흑인차별 해소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변화가 올지 회의적’이라는 반응(43%)이 적지 않았다.
백인 중 ‘흑인차별 해소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응은 53%로 흑인에 비하면 크게 낮았다. ‘흑인차별 해소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백인도 38%로 상당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월드 이슈] 흑인대통령 시대 더 갈라진 흑·백
입력 2016-07-18 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