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발생한 터키 군부 쿠데타는 취임 이후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이슬람주의’를 강화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쿠데타가 6시간여 만에 진압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제왕적 리더십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특히 그가 주창한 이슬람주의 기조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정적’ 뿌리 뽑기? ‘쿠데타 조작설’도
에르도안은 2003년 취임 이후 총리직을 세 차례 연임한 뒤 2014년 대통령에까지 오르며 ‘철권통치’를 이어왔다. 하지만 군부는 물론 언론계와 법조계 등에서 광범위한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에르도안은 오래전부터 미국에 체류 중인 이슬람 사상가 페튤라 귤렌(74)과 지지자들이 정권 전복을 꾀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검찰과 경찰이 에르도안 정권 핵심 인물의 부패수사를 벌이자 사법부 내 귤렌 추종자들이 ‘사법 쿠데타’를 일으켰다며 대대적인 숙청을 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쿠데타 진압 직후 에르도안은 귤렌을 배후로 지목하며 미국 정부에 신병송환을 요청했다.
귤렌은 봉사를 바탕으로 이슬람의 가치를 알리는 ‘히즈메트’(봉사) 운동을 이끌며 이슬람주의자의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불렸으나 독재자의 길을 걷는 그를 비판하면서 졸지에 가장 큰 정적(政敵)이 됐다.
터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쿠데타는 에르도안의 탄압으로 위태로워진 군부 내 귤렌 세력이 에르도안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귤렌이 쿠데타의 배후라는 증거가 없으며, 에르도안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이번 쿠데타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고 독일 슈피겔은 전했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세속주의 패배?
터키는 중동에서 사실상 유일한 정교분리의 국가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1881∼1938) 초대 대통령은 1923년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면서 철저히 세속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헌법에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다는 조항을 넣지 않았고 이슬람 전통 복장도 폐지했다.
터키 군부는 세속주의 시스템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했다. 군은 1960년과 1980년 쿠데타를 일으켜 세속주의를 위협한 집권당을 축출한 뒤 2∼3년 후 민간에 권력을 이양했다. 터키 헌법에도 ‘군은 국가의 수호자’로 표현돼 있으며 한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을 정도였다.
반면 에르도안은 철저한 이슬람주의자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소속 정당이던 복지당에 대해 “세속주의를 위협한다”며 해산을 명령하자 이슬람주의를 강화한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하고 당대표가 됐다. 충돌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에르도안은 AKP 당헌에 총리직 4연임을 금지하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뒤 2014년 터키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직선제 대선에서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개국 이래 의원내각제였던 터키를 대통령제로 바꾸기 위한 개헌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기에 제동을 걸기 위한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세속주의 수호자로서의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터키 정부가 쿠데타군에 대해 승리를 선언했지만 터키 민주주의의 승리는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힘받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내친김에 숙원 개헌까지?
입력 2016-07-18 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