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업의 영리적 불법행위’와 음주운전·뺑소니 사고 등 ‘악질 범죄’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 인정 액수를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으로 불거진 위자료 상향 여론에 대해 공감대를 표시한 것이다.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기업 불법행위의 경우 피해자 사망 위자료를 2억∼3억원으로 책정하고, 증거인멸 등 죄질에 따라 액수를 1.5∼2.5배 가중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대전지법은 지난 15일 전국 5개 고등법원과 18개 지방법원 소속 판사 46명이 참여한 ‘2016년 전국 민사법관 포럼’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인정 액수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17일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전국 법관들이 모여 위자료 액수 현실화를 본격·구체적으로 논의한 첫 자리”라며 “향후 위자료 액수를 전향적으로 높이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럼에서는 불법행위 유형을 소비자·시민에 대한 영리적 불법행위, 고의적 교통사고, 대형 재난사고, 인격권 침해 행위 등 4가지로 구분했다. 먼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소비자·시민에 대한 영리적 불법행위’의 경우 피해자 사망 시 위자료를 기본 2억∼3억원으로 책정하고, 기업에 고의·중과실이 있거나 피해자가 아동 또는 고도의 장애를 장기간 겪어야 할 경우 1.5∼2.5배 높이자는 제안이 나왔다. 여기에 사건별 내용에 따라 위자료를 50% 증감키로 했다.
음주운전·뺑소니 사고 등 ‘고의적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피해자 사망 시 위자료를 1억5000만∼2억원으로 정하고, 사안에 따라 30% 증감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현재 일반 교통사고의 위자료 기준(1억원)보다 액수를 높여 고의적 교통사고를 억제하고, 윤리적 책임을 더 엄하게 묻겠다는 취지다.
항공기 추락·건물 붕괴 등 대형 재난사고의 경우 2억원을 사망 위자료 기준 금액으로 설정하고, 불법행위자에게 의도적 부실제작·건조, 운영상 중과실 등이 있을 경우 위자료 액수를 더 높이기로 했다. 명예훼손 등 인격권 침해 사건에도 현 위자료 액수보다 2∼3배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위자료 상향 제안이 확정될 경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최근 법원에 일괄 청구한 위자료(1000만원) 액수도 조정될 전망이다. 법원 관계자는 “하반기 예정인 손해배상 전담재판장 회의를 거쳐 적정 위자료 액수가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기업 불법 영리행위 피해자 위자료 높이겠다”
입력 2016-07-18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