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검찰청 특수부에서 일하는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부장검사가 사건에 개입해 이유도 없이 수사를 지연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부장검사는 말끝마다 나와 전라도 출신 노모 경감을 비하했다. ‘뭐야? 전라도라는 이유로 우리를 하대하는 거야?’
초임 경찰 시절엔 지역색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경찰 조직의 밑바닥, 하부조직은 호남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나 경찰 간부직에 올라갈수록 특정 지역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열심히 일해도 승진할 수 없는 구조가 생겼다. 특히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탈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특정지역 출신인 특수부장은 빈번하게 모욕적 언사를 했다.
어느 날이었다. 참다못해 회식 자리에서 부장검사를 향해 한마디 했다. “사람 너무 괄시하지 마십시오. 왜 그렇게 사람을 무시합니까!” 부장검사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다음날 사직서를 부장실 책상에 올려놨다. 사표를 내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고이 잠든 10살 큰 딸과 7살 둘째 딸, 5살 막내 아들이 눈에 밟혔다. 눈물이 다 났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사표를 내다니….’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집에 쉬고 있는데 우체국 집배원 아저씨가 우편물을 하나 건넸다. ‘이게 뭐지?’ 우편물 속에는 국회의원 수첩이 한 권 들어있었다. 한양대 행정대학원 동기 중 국회의원 보좌관이 있었는데 그가 보내준 것이었다.
나는 수첩 안에 적혀 있는 국회의원 249명, 비례대표 50명의 인적사항과 학력, 경력을 꼼꼼히 살펴봤다. 의원들은 경력이 정말 화려했다. 대부분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대학도 나오지 않고 경력도 시원치 않은 의원이 눈에 띄었다.
‘그래, 내가 지금부터 공부를 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해도 잘못된 지역주의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한 부장검사보다 기수가 아래일 것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 국회의원이 된다면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곳은 국회, 즉 입법기관이었다. 누구든 지역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우수한 사람이 인정받는 정당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역 구도를 바꾸고 어려운 서민, 장애인, 소외된 이웃,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기로 했다.
사표는 반려됐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경찰관으로 복귀했다. 그때부턴 과거와 다른 삶을 살았다. 낮에는 공직 생활을 하고 밤에는 정치 공부를 했다. 주말에는 조직관리를 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정치인이 되기로 하면서 내가 가졌던 인식은 180도 변화됐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통일 국제 등의 관점은 물론 NGO,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모든 것을 새로 재정립했다.
나는 2000년 4월 열리는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먹고 검찰에서 경찰로 복귀한 뒤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1999년 3월 서울 중랑경찰서 형사과에서 퇴직했다. 이로써 경찰 7년, 검찰 13년 등 총 20년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이동섭 <6> 검사의 지역 차별에 사표… “국회의원 돼 바로잡자”
입력 2016-07-17 19:30 수정 2016-07-17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