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감금당한 ‘대통령 직무대행’

입력 2016-07-15 19:00 수정 2016-07-15 21:17
15일 경북 성주군청에서 열린 사드 배치 관련 주민설명회를 파행 끝에 마친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 미니버스를 타고 군청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수백명의 주민들이 트랙터 2대를 동원해 이를 막고 있다. 주민들은 황 총리 일행에 계란과 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다. 성주=윤성호 기자

황교안 국무총리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주민 설명회를 위해 경북 성주를 찾았다가 계란과 물병세례도 모자라 6시간 동안 버스 안에 갇혀 있었다. ‘대통령 직무대행’의 권한이 사실상 6시간 동안 정지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1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몽골을 방문 중인 탓에 황 총리는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직무대행을 감금한 것은 이유를 떠나 잘못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황 총리는 15일 사드가 들어설 성주포대를 둘러보고 성주군청에서 열리는 주민설명회에 참석해 사드 배치 선정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황 총리는 연설을 마치지 못했고 주민설명회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황 총리 일행은 이날 오전 11시쯤 헬기를 타고 성주군청에 도착했다. 청사 앞 광장과 주차장에 ‘사드배치 결사반대’라고 쓴 붉은색 머리띠를 한 채 집결해 있던 주민 5000여명의 표정은 비장했다.

황 총리 일행이 김항곤 성주군수 등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사 정문 앞 계단에 들어서자 곧바로 날계란과 물병이 날아들었다. 경호원과 경찰이 우산 등으로 이를 막았지만 계란 분비물이 황 총리에게 떨어졌다. 국무총리가 봉변을 당한 건 1991년 6월 정원식, 2014년 4월 정홍원 총리에 이어 세 번째다.

셔츠와 양복 상·하의에 계란 분비물이 묻은 상태로 마이크를 잡은 황 총리는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가로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또 “조금이라도 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사드 배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청을 가득 메운 군민들은 “개××야” “북한을 핑계대지 말라”며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연설은 중단됐다. 곳곳에서 또다시 물병과 계란, 소금 등이 날아들었다. 황 총리 일행은 군청으로 피했다가 서울로 복귀하기 위해 미니버스에 올랐으나 격앙된 군민들이 트랙터로 막아섰다.

좀처럼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오후 4시15분쯤 주민 대표 5명은 미니버스 안에서 황 총리 등을 만나 40분간 면담했으나 대치 국면은 여전했다.

주민과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경찰은 12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총리 구하기’에 나섰고 황 총리는 오후 5시35분쯤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군청과 공동어시장 사이에 미리 준비해둔 승용차로 옮겨 탄 뒤 성주 군부대에 도착해 헬기를 타고 상경했다. 황 총리의 기나긴 하루는 이렇게 끝났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총리가 성주를 방문했다가 6시간 동안 성난 주민들에 의해 감금되었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큰 잘못”이라며 “특히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이러한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성주군민들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폭력이 용납돼서도 안 된다”고도 했다.

정건희 기자, 성주=김재산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