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사진을 지금 다시 보니 흑인 폭동 씨앗이 숨어있었네”

입력 2016-07-17 17:45
1960년대 후반, 수많은 히피들을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극히 한 부분을 골라 확대한 것이다.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황규태 작가
금발 백인 여성을 바라보는 흑인 남성의 눈길이 그윽하다. 정작 이 백인 아가씨의 시선은 이 남자가 아닌 다른 데를 향하고 있다. 흑백 피부색의 대조가 강렬한 이 전시 포스터 사진은 50여 년 전 찍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것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냈지요. 그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사진 속 특정 장면이 새삼스럽게 다가왔고 그런 부분을 확대한 ‘블로우 업(blow up)’ 사진인 것이지요. 이를 테면 지금의 시점에서 재해석한 사진입니다.”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원로 사진작가 황규태(78·사진)씨의 ‘블로우 업 어메리카’전이 열리고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전시는 27세 때인 1965년 도미한 이후 10여간 ‘멜팅 포트(melting pot)’ 미국의 모습을 흑백 사진에 담은 것이다. 동양인 혹은 남미 입양아를 둔 백인 가족, 자유와 저항의 히피 문화, 흑인과 백인이 섞여 사는 모습, 산업화의 그늘 등이 동양에서 온 청년의 눈에 특히 들어왔다.

경향신문 사진기자 출신인 그는 65년 특파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이를 계기로 역이민했다. 미국에서 생계를 위해 당시로서도 첨단인 컬러현상소에서 일했다. 그 때 컬러 사진 메이킹을 한 경험은 그가 몽타주, 태우기, 이중노출 등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며 예술 사진 세계를 개척하는데 기회와 영감을 주었다. 그런 그가 왜 지금 미국 생활 초기의 ‘생활주의적 다큐 사진’을 꺼내들었을까. “15년 전 한국의 60년대 사진을 재해석한 블로우 업 사진 전시로 호평 받았어요. ‘블로우 업 미국 버전’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전시장은 60년대의 원판 사진을 진열한 공간과, 그 때의 원판 사진에서 블로우 업 사진을 진열한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발에 샌들을 신은 다리만 있는 사진이 주는 느낌은 기이하다. 이 사진의 원본은 무엇일까. 다른 방에서 수많은 히피들이 어울려 공원에서 춤추거나 뒹구는 장면의 어느 부분에서 그 샌들을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퀴즈를 푸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전시다.

흑인과 백인의 엇갈린 사랑을 연상시키는 전시 포스터 사진 역시 인종을 초월한 자유와 평화를 주장하는 히피들의 모임사진에서 따온 것이다. 미국에서 흑백 인종갈등이 첨예하고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예고하고 있는 듯해 섬뜩하다.

“그 때는 차별이 심해 갈등이 수면 아래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화가 진전되며 갈등이 분출돼 폭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60년대 찍은 사진을 지금 ‘블로우 업’ 해 다시 전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8월 13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