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지척 사는데… 40대 장애인 20년간 ‘축사 노예’

입력 2016-07-14 21:36

40대 지적장애인이 20년 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축사에서 강제 노역을 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70대 노모는 아들이 집을 나섰다가 행방불명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주민등록 말소를 하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들과 어머니(77)는 불과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서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아들은 현재 사회복지시설에 인계돼 어머니와의 상봉을 앞두고 있다.

충북 청원경찰서는 지적장애인 A씨(47)를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축사에서 일을 시킨 B씨(69)를 근로기준법,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A씨가 1997년부터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B씨 축사에서 일해왔지만 그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B씨는 젖소·육우 등 소 4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으며,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A씨는 그동안 옆 6.6㎡(2평) 남짓한 방에서 ‘축사 노예’ 생활을 했고 ‘만득이’라고 불리며 이들의 일을 도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쪽방은 도배가 안 됐고 축사에서 불과 3m 정도 떨어져 있어 악취가 진동했다. A씨는 열악한 쪽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축사일과 밭일을 병행했다. B씨는 20년 동안 A씨에게 돈을 한푼도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

B씨는 장애가 있는 A씨의 가족을 찾아주거나 사회복지시설 등에 신고하지 않고 감금했다. A씨는 B씨에게 가혹행위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아내도 남편의 행위를 방조했다. 마을 주민 어느 누구도 행정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A씨의 강제노동은 경찰의 탐문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A씨는 지난 1일 오후 9시쯤 축사와 200m 떨어진 한 공장 건물로 비를 피했다가 경비업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발견됐다. 당시 A씨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경찰은 B씨에게 인계했다. 하지만 A씨의 말과 행동이 어눌한 점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마을 주민 탐문수사를 통해 A씨의 무임금 노역 정황을 확인했다.

경찰 수사 결과 A씨의 신원이 확인됐다. A씨는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거주했던 고모씨로 드러났다. 고씨는 자신의 이름도 버린 채 만득이로 살아온 것이다. 고씨는 행정 서류에 2급 지적장애 등급을 받은 것으로 기록됐지만 20여년 전 행방불명 처리됐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일을 시키고 돈을 준 적이 없다”며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는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노동과 임금의 관계 등 개념은 알지 못하고 있다”며 “그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데다 대인기피증 증상을 보이고 있어 하루이틀 안정을 취한 뒤 사회복지사 입회 하에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