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지난해 6월 야심차게 추진했던 ‘궁(宮) 스테이 사업’이 전문가와 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완전 무산됐다. 세계적 명사를 대상으로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겠다며 추진했던 당초의 숙박 사업뿐 아니라 후속으로 내놨던 일반인 대상 고궁 숙박 체험까지도 접었다.
궁 스테이 사업의 만신창이 최후는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정부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정책 실패의 본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재청은 14일 “전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결산심사에서 궁 스테이에 대한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계속됐다”며 “지난해 이미 중단을 표명한 (외국 명사 대상) 궁 스테이는 물론 내년에 경복궁에서 시설개조 없이 진행하려던 숙박 체험을 포함한 일체의 궁궐 숙박 프로그램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영근 문화재청 차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전에 추진했던 궁 스테이는 화장실 설치 등이 필요했다. 그런 시설변경 없이 고궁에서 숙박할 수 있는 다른 문화 체험은 계속 추진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궁중문화축전을 하면서 일반 가족 대상으로 시범 실시한 숙박 체험이 호평을 받아 내년부터 예산을 반영해 경복궁 함화당, 집경당에서 문화 체험형 궁 스테이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공식석상에서 밝힌 내년 사업 계획마저 철회하게 된 것이다. 결국 조선왕조 500년 전통과 역사가 서린 궁궐 숙박이 가져올 문화재 훼손과 화재 우려 등에 대한 반대 분위기를 넘지 못한 관 주도형 정책의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미 창덕궁 낙선재 권역에서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석복헌과 수강재를 보수해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궁 스테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흘렸다가 여론의 반발이 거세자 지난해 9월 3개월 만에 사업 추진을 중단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의 경우 역사적 건축물이 석재로 되어 있어 화재 위험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면서 “우리나라 궁궐은 원형의 거의 10∼20%만 남아 있는 상황인데 외국과 단순 비교해 궁궐을 숙박에 활용하겠다는 건 문제”라는 의견을 내놨었다.
추진 과정도 문제가 있다. 궁 스테이 사업은 공식 발표가 아니라 한 매체의 언론 보도를 통해 불거졌다. 당시 문화재활용국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궁 스테이 사업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문화재 전문가 황평우씨는 “문화재의 활용이냐, 보존이냐는 여전히 논란이 많은 사안인데도 문화재청이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여론수렴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이 문제”라며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에 2009년 문화재활용국이 신설되면서 정부 정책이 문화재 활용 일변도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건축가 K씨는 “정부에 새로운 국이 생기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기획] 宮에서 하룻밤?… 무산된 ‘관치행정’
입력 2016-07-1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