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니 날았다… ‘아버지 리더십’이 일군 한국판 칼레의 기적

입력 2016-07-15 00:09
부천 FC 1995 선수들이 지난 1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의 FA컵 8강전에서 3대 2로 이긴 뒤 원정 응원을 온 150여 명의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부천 팬들은 열띤 응원으로 유명한데, 홈경기가 열리면 평균 1500명이 경기장을 찾는다. 뉴시스
송선호 감독
1999-2000 시즌 쿠프 드 프랑스(Coupe de France·프랑스 FA컵)에선 기적이 일어났다. 인구 8만명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를 연고로 한 4부 리그 팀 ‘라싱 위니옹 FC 칼레’가 상위 리그 팀들을 연파하며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정원사, 체육교사, 구멍가게 주인, 항만 노동자 등이 선수로 뛴 칼레는 결승에서 1부 리그 팀 FC 낭트를 만나 1대 2로 패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칼레의 기적’으로 남았다.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승자가 두 팀이다. 낭트는 결승전 승자고, 칼레는 정신력의 승자다.” 이번 시즌 한국판 칼레의 기적을 재현하는 팀이 있다. 바로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의 시민구단 부천 FC 1995다.

부천은 지난 1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소속 전북 현대와의 2016 KEB 하나은행 FA컵 8강전에서 3대 2로 이겼다. 챌린지 팀 최초로 FA컵 4강에 진출한 것이다. 부천은 FA컵 32강전에서 또 다른 클래식 팀인 포항 스틸러스를 2대 0으로 제압해 파란을 예고했다.

강호 전북은 부천에 덜미를 잡혀 트레블(리그·FA컵·ACL 우승) 달성에 실패했다. 이번 시즌 클래식 개막 후 19경기(10승9무) 연속 무패를 달리고 있는 전북이 국내 대회에서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7년 12월 1일 시민들이 힘을 모아 창단된 부천은 만년 하위팀이었다. 챌린지 출범 첫해였던 2013년 8개 팀 중 7위에 머물렀고, 이듬해엔 10개 팀 중 최하위였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시즌 초반 2승3무5패로 하위권으로 처지자 5월 29일 최진한 감독이 부진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송선호(50) 수석코치가 지휘봉을 잡은 후 부천은 변하기 시작했다. 송 감독의 ‘아버지 리더십’이 선수들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1988년 부천 유공(현 제주)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송 감독은 1996년 그곳에서 은퇴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2007∼2010년)과 인천 유나이티드 스카우트(2010∼2013년)을 거친 뒤 2014년 최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로 부천에 합류했다. 송 감독은 선수들이 없으면 감독도 없다는 신념으로 팀을 이끈다. 부천 사령탑에 오른 직후 그는 “나는 너희들을 믿고 있다”며 선수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그는 감독대행 시절부터 경기 때 정장을 입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선수들과 하나가 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전북전에서도 송 감독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부천은 평균 연봉이 9위에 그친다. 그러나 리그 최다인 42명의 선수들은 불평하지 않고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다. 압박 수비후 역습 전술을 구사하는 부천은 다른 팀보다 두 배 많이 뛰는 축구를 한다. 그래도 선수들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부천엔 1부 리그에서 실패를 맛보거나 주전에서 밀려난 선수가 많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선수는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안다. 그 간절함이 부천에 와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부천은 지난겨울 사천 등지에서 실시한 전지훈련을 통해 강팀으로 거듭났다. 송 감독은 “기존 선수들과 올해 영입한 선수들이 동계훈련을 할 때 좋은 모습을 보여 줬다”며 “동계훈련을 하면서 수비조직 훈련을 정말 많이 했다”고 말했다. 부천은 수비 조직력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빠른 역습과 날카로운 세트피스라는 무기도 장착했다. 부천은 이번 시즌 11개 팀 중 최소 실점(13골)을 기록 중이다.

‘자이언트 킬러(강팀을 꺾는 약팀)’로 변한 부천은 이렇게 외친다. “축구에서는 약팀이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바뀐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