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수박

입력 2016-07-14 19:21

수박은 좀 불편한 채소다. 우선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 시골에 십여 년 살면서 텃밭에 이런저런 작물들을 심어봤는데, 수박 농사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씨를 뿌리고 이따금 김을 매주면 대충 자라는 푸성귀나 콩, 옥수수 같은 것들과 다르다.

첫 해에는 야구공만한 수박, 탁구공만한 수박들이 조롱조롱 달렸다. 잘라보면 속이 허여멀갰다. 농사 전문가인 동네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니 넝쿨이 뻗기 시작하면 서너 번째 마디에서 본 줄기를 잘라줘야 한단다. 또 열매가 여럿 달리지 않게 순을 자꾸 따줘야 한단다. 수박이 한 두 개만 달리게 순을 따준다는 말은 납득이 갔는데, 본 줄기를 잘라줘야 한다고? 내가 뭘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줄기를 그대로 두었다가 또 망했다. 그밖에도 웃거름을 줘야 하고, 또 열매가 흙에 닿아 썩지 않게 방석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겨우 수박 한두 개 달리면서 넝쿨은 얼마나 요란하게 뻗는지 밭을 온통 다 차지할 지경이다. 그 모든 수고의 목적은 단맛을 높이려는 것도 있지만, 수박을 수박다운 크기로 키워내기 위한 것이다.

이제는 도시에 살고 있지만 수박은 여전히 불편하다. 역시 크기 때문이다. 식구가 얼마 안 되는 우리 집에서는 수박 한 통을 사오면 그걸 다 먹는 게 큰일이다. 부피가 큰 둥근 물체라 냉장고에 오래 넣어두기도 곤란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지, 슈퍼마켓이나 시장에 가면 수박을 절반으로, 혹은 4분의 1 크기로 잘라 진열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품종을 개량해서 크기가 작아진 수박들도 눈에 띄고.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여름저녁은 식구들끼리 마루 위에, 혹은 마당의 평상 위에 둘러앉아 수박 한 통 잘라먹던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 수박은 냉장고가 아니라 차가운 물에 담갔다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잔치 벌이듯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래간만에 시장에서 절반으로 잘라 놓은 수박을 집어 들면서, 수박을 수박다운 크기로 키워내기 위한 수고가 이제는 무색해진 듯하여 나는 또 잠시 불편해진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