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클리볼드. 세상에 이렇게 슬픈 엄마가 있을까. 나이 오십에 고등학생이던 아들을 잃었다. 형제 중 막내. 그 아들은 죽기 전 무려 13명을 죽였고, 24명을 다치게 했다. 그녀는 가해자의 엄마였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드러내 말할 수 없는, 아들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나았을 것 같은, 살인자의 엄마였다.
아들 이름은 딜런 클리볼드. 그 유명한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의 가해자 두 명 중 한 명이다. 딜런은 친구와 함께 다니던 학교에서 총과 폭탄으로 학살극을 벌인 후 자살했다.
콜럼바인 사건의 17주기였던 지난 4월, 수 클리볼드의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평범하고 사랑스런 내 아들은 어떻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살인자가 되었을까?” 그녀가 지난 17년간 묻고 또 물었던 이 질문에 대해 보고한다. 그녀의 얘기는 아들 딜런을 괴물로 그리는 방식으로 참사를 이해하고 넘어갔던 미국 사회에 또 한 번 충격을 안겨줄지 모른다.
“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딜런은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자상한 부모가 있었고, 유쾌한 형이 있었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다. 방임이나 학대 같은 건 없었다. 딜런은 자라는 동안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폭력 사건에 휘말린 적도, 게임이나 마약, 술에 중독된 적도 없었다. 총기를 소유한 집도 아니었다. 이듬 해 대학 진학도 예정돼 있었다.
그러니까 “비극을 예감할 만한 일이 우리 가족의 삶에서 한 가지도, 단 한 가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수 클리볼드는 아들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의 격랑을 헤쳐 나가면서도 질문을 놓을 수가 없었다.
“우리 ‘햇살’, 착한 아이, 늘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끼게 만들어주던 아이. 딜런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대체 딜런의 삶 어디에서 그게 나온 걸까?”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낸 생전 딜런의 모습이나 참사 당시의 상황, 그리고 참사 후 이 가족이 겪어낸 일들에 대한 묘사는 꽤나 정밀하다. 페이지마다 슬픔과 자책, 수치, 그리움으로 온 몸이 녹아내린 엄마의 모습이 비치는 듯 하다.
수 클리볼드는 결국 “딜런이 우울이나 다른 뇌건강 문제를 겪고 있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욕망을 품게 되었고, 딜런의 죽음에 대한 욕망이 딜런이 학살에 참여하게 된 본질적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딜런을 돕지 못했다니. 나는 딜런의 일기를 읽으며 울고 또 울었다.”
아들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세상이 규정한 대로 학살로 바라보려고 하니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자살에 주목하자 비로소 정리가 됐다. 살인 행위가 자살로 이어진다는 게 그동안의 통념이었지만, 자살 충동이 종종 살인과 연결된다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들이 저지른 비극을 감당하며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면서 아들의 살인과 자살에 대한 길고 고통스런 탐구를 이어가는 이 책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한다.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내 자식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자식을 아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압도적인 비극이라도 인간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나는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입력 2016-07-14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