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핀 고향집뿐 아니라 주변의 학교, 경찰서, 방공호 등을 잊지 않고 그려 넣었다. 꿈에서도 목매어 불렀을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라는 글귀도 있다. 대동강 위에 철교를 표시하고 그 옆에 네모 칸을 그려 ‘우리 집’이라 쓴 약도식 그림도 있다. 행여 살아생전 통일이 안 되면 손주들이 꼭 찾아볼 수 있도록 번지수까지 또박또박 적었다.
이제는 80∼90대가 된 실향민들이 3인치 크기 정사각형 작은 종이에 그린 고향 그림 500장이 육면체 퍼즐 모양의 3층 높이 거대한 연등으로 만들어졌다. 오는 9월 영국 런던 템스강 밀레니엄브리지 옆에 둥둥 뜰 재미 설치작가 강익중(56)씨의 작품 ‘집으로 가는 길(Floating Dreams)’이다.
강 작가는 템스강을 무대로 매년 9월 한 달간 펼쳐지는 런던의 대표적 문화행사 ‘토털리 템스(Totally Thames)’의 올해 메인작가로 초청됐다. 이 행사의 창립자이자 총감독인 아드리안 에반스씨가 강 작가와 함께 서울을 찾았다.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 작가는 “보트피플 같은 난민 문제가 주제로 던져져 고민하던 중 문득 내 곁의 난민은 우리 실향민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어르신들이 결국은 모두 우시더라. 그 사이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다”면서 “지금까지 작업을 하면서 지향해 왔던 통일에 대한 소망과 연결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3인치 작가’로 불리는 강씨는 3인치 크기 캔버스에 전 세계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 5만장을 모아 2001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벽화처럼 전시한 ‘어메이즈드 월드’로 유명세를 탔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2008년 선보인 광화문 가림막 프로젝트 ‘광화에 뜬 달’로 한국의 대중에게도 친숙한 작가가 됐다. 그는 “분단의 아픔을 가진 우리 민족의 희망이 강물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치료의 백신이 되기를 바란다”며 “런던 행사가 끝나면 중국 양쯔강, 남미 아마존강 등 전 세계로 돌며 통일에 대한 꿈을 전파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에반스 총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강 작가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하게 돼 기쁘다”면서 “실향민 문제는 영국의 브렉시트 배경이 된 난민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작품 ‘집으로 가는 길’… “분단의 아픔, 치료할 백신 되길”
입력 2016-07-13 18:29 수정 2016-07-13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