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가 충돌했다. 전당대회 준비 과정 내내 잠복해 있던 더민주 내 정체성 갈등이 사드 배치를 계기로 격화되고 있다. 총선 승리가 가져온 ‘수권(受權) 대 야성(野性)’ 딜레마 속에서 주류의 자신감, 비주류의 냉소가 뒤엉키며 파열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김종인 vs 문재인
문 전 대표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드 한반도 배치는 득보다 실이 많다”며 재검토 및 공론화를 요구했다. 이번 발언은 신중론을 펼치는 당 지도부, 이에 반발하는 의원 사이 이견 조율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왔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감안한 듯 전면 철회 대신 정부 결정 과정의 문제를 따져물었다. 문 전 대표는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졸속으로 결정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고, 경제에도 설상가상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봤다. 본말전도, 일방결정, 졸속처리를 문제로 지적한 뒤 초당파적 위기관리 방안 마련을 촉구했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이란 강수까지 던졌다.
당내 신중론을 주도해온 김 대표는 이를 문 전 대표 개인 생각으로 치부했다. 그는 “문 전 대표 발언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 재검토하라고 한다고 그게 재검토가 되겠느냐”며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발언 역시 본인 생각”이라고 했다. SOFA 개정에 대해선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 소리 개인적으로 하는 게 구속력이 있어야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사드 문제는 단편적으로 찬성이냐 반대냐, 그런 논리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수권 vs 야성
이 충돌은 더민주가 앓고 있는 내부 정체성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총선 승리 후 더민주는 정권교체를 위한 잰걸음을 걷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주류의 자신감, 이를 우려하는 비주류의 냉소가 확산됐다. 사드 배치 문제는 이런 갈등을 표면화하는 트리거가 되고 있다. 주류·비주류 간 경계도 명확하지 않아 진행 과정에 따라 극단적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
김 대표 측은 사드 배치 반대가 ‘실익’이 없다고 본다. 대선 승리로 집권한다면 이 결정을 뒤집을 수 있겠느냐는 근본적 의문이 있다.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정권에 따라 입장을 번복해선 안 된다는 우려다.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도 이런 입장을 일부 수용해 신중론을 내세웠고, 문 전 대표가 당론 요구 대신 초당적 위기극복 기구를 내세운 것도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대편엔 절차적 문제가 분명한 상황에서 침묵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반론도 엄연하다. 타당한 비판까지 참으며 수권 행보를 보이는 것은 문제라는 당내 비판이다. 전날 열린 더민주 의원간담회에선 양측 입장이 격돌했고, 당론 대신 개인 자격으로 각자 반대 의사를 밝히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됐다. 이날 고(故) 김근태 전 상임고문 인사가 주축인 더민주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의원은 사드 반대 및 국회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며 지도부 입장을 전면 반박했다. 김 대표는 8월 27일 전당대회 후 독일로 떠나 추미애 송영길 의원이 경쟁하고 있는 신임 지도부와 거리를 둘 예정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김종인 “文 발언 뭐가 대단해”… 사드發 정체성 갈등
입력 2016-07-13 18:13 수정 2016-07-13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