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었다.
평균나이 66세, 연기경력 30년 이상의 원로배우 9명이 출연한 연극 ‘햄릿’(8월 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배우의 연기에만 오롯이 기댄 작품이다. 전무송(75), 박정자(74), 손숙(72), 정동환(67), 김성녀(66), 유인촌(65), 윤석화·손봉숙(60) 그리고 개막 20여일을 앞두고 권성덕(76) 대신 합류한 한명구(56)까지 9명의 배우들은 12일 첫 공연에서 각자 맡은 주요 역할은 물론 다양한 조역까지 부지런히 해냈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데다 서로 경쟁이 붙은 덕분에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대단했다. 특히 발성과 발음은 요즘 젊은 배우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서 대사 하나하나가 귀에 꽂혔다.
작품의 특성상 타이틀롤을 맡은 유인촌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6번째 햄릿 역에 출연하는 유인촌은 품위 있으면서도 격정적인 햄릿을 만들어냈다. 염색을 하지 않은 채 흰머리를 드러냄으로써 굳이 젊음을 꾸미지 않았지만 그는 연기력만으로 햄릿을 여유 있게 소화해냈다. 클로디어스왕의 정동환, 폴로니어스의 박정자 등도 따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사실 고 이해랑 선생 100주년 기념으로 원로배우 9명이 출연하는 ‘햄릿’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나이는 물론 성별까지 초월한 캐스팅이다 보니 ‘경로잔치’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극작가 배삼식과 연출가 손진책은 이 작품을 관객들이 원로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각색하고 연출했다.
원작대로 공연하면 4시간가량 걸리는 ‘햄릿’을 이번에 2시간45분 정도로 압축했다. 공연 내용만 보면 특별한 해석이 가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로배우들이 연극을 한다는 극중극 형태를 취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연극의 의미와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원로배우들이 극중 배역을 연기할 경우 관객들이 몰입하기 어려울 것을 감안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작품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무대와 백스테이지에 세운 가설무대(600석)로 고대 그리스 시대 원형극장을 축소한 형태다. 조명이 켜지면 빈 무대에 놋쇠로 만들어진 제기 9개가 놓여져 있다. 검은 망토를 입은 배우들이 등장해 제기에 따라진 물에 손을 씻은 뒤 외투를 벗고 무대 복장을 드러내는 것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연극의 제의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서구 연극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 연극이 종교적 제의인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 연극을 통해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 교감과 소통을 추구하는 극작가 및 연출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햄릿’의 공연이 끝난 뒤 원로 배우들이 다시 검은 외투를 입으면 무대 뒤편 배경막이 올라간다. 드러난 해오름극장의 객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에서는 평생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운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올여름 연극계 최대 화제작인 ‘햄릿’은 이미 전체 공연 티켓의 80% 이상이 팔린 상태다. 다시는 성사될 수 없는 캐스팅이라는 점이 그동안 부각됐지만 이제는 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다시 묘사되어야 할 것 같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리뷰-‘햄릿’] 연극은 역시 ‘배우의 예술’이었다
입력 2016-07-13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