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우리나라에서 판매한 32개 차종, 79개 모델의 배출가스, 소음, 연비 등의 인증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은 폭스바겐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서류 조작이 의심되는 이들 차종에 대해 최근 환경부에 행정조치를 의뢰했고, 환경부는 조작이 확인되는 차종에 대해 이달 말쯤 인증취소 처분을 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인증취소 처분이 내려지면 폭스바겐이 현재 시판 중인 72개 차종 중 약 40%가 판매정지를 당하는 셈이다.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이 국제적 스캔들로 비화된 지 1년가까이 지나서야 국내에서 제재국면에 들어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다.
검찰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적발된 폭스바겐의 비리 종류와 건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간 크게 위법을 일삼은 것은 국내 규제가 느슨한 데다 이를 어겨도 처벌이 가볍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증 심사가 서류로만 진행된다는 점을 악용해 이미 인증을 통과한 차량 모델의 시험성적서를 다른 모델의 것으로 바꿔 제출했다. 심지어 안전성과 직결된 전자제어장치까지 인증 통과를 위해 몰래 교체했다. 인증 취소 처분에 따른 과징금도 차종당 10억원으로 상한선이 제한돼 있다. 지난해 11월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에 대한 과징금이 141억원에 그쳤다. 폭스바겐이 미국 환경보호청에 내야 할 벌금은 약 21조원에 이르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폭스바겐은 지금까지도 적반하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배출가스 임의설정(조작) 금지 규정이 2012년 1월 시행됐고, 해당 차종은 그 이전에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폭스바겐은 또한 조작 인정이라는 핵심 내용을 빠뜨린 리콜 계획서를 제출해 지난달 환경부로부터 3번째 퇴짜를 맞았다. 버티기 작전이다.
폭스바겐은 미국에서는 지난달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미국 소비자들에게 1인당 1000만원 안팎씩 약 18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배상금 없이 사회공헌기금으로 100억원을 내놓겠다고 밝혀 국내 소비자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다국적 기업의 이런 소비자 차별과 국내 법 무시는 우리 정부와 국회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역대 정부는 소비자 보호 및 환경·안전 관련 규제 강화와 이를 시행할 인프라 투자를 뒷전에 미뤄왔던 게 사실이다. 국회도 집단소송 관련법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시기상조”라며 번번이 외면했다. 과거에는 유치 단계의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제 현대·기아차도 동업종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다국적 기업이다. 무역과 투자자유화 시대에 국내 산업에 대한 과잉 보호는 외국계 기업의 횡포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사설] ‘비리 백화점’ 폭스바겐… 퇴출 위기 자초했다
입력 2016-07-12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