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게이트’를 일으킨 폭스바겐이 한국시장에서 쫓겨날 처지임에도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구체적인 보상안을 내놓지 않아 한국을 우롱한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폭스바겐의 속내는 한국보다는 유럽시장에서 천문학적인 보상을 더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중이 미미한 한국에서 보상을 해줬다가 배출가스 기준이 같은 유럽에서 수십배의 보상금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술한 국내법도 폭스바겐의 배짱 영업을 부르는 이유로 꼽힌다.
환경부는 국내에 판매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32차종 79개 모델에 대해 인증을 취소한다는 방침이다. 2007년부터 판매된 30만대의 70% 정도인 20만4500여대가 행정처분 대상이고, 처분이 내려지면 신차 판매까지 정지된다. 사실상 폭스바겐그룹의 국내 영업이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폭스바겐 측은 “법적 조치를 포함한 대응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잘못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미국에서 47만5000여명에게 총 18조원 규모의 배상을 하기로 했지만 한국에선 사회공헌기금으로 100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만 밝힌 상태다.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여긴다는 불만이 터지는 이유다.
폭스바겐은 한국이 유럽의 배출가스 기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결코 한국부터 배상을 해주지 않고 끝까지 버틸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문제가 되는 폭스바겐그룹의 차량은 800만대로 추산된다. 미국 사례를 적용해 유럽에 보상한다면 최대 수백조원대 배상금이 산출된다.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파산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미국 수준의 보상을 하라는 유럽 당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폭스바겐 측은 또 한국과 유럽의 허술한 법망을 악용하고 있다. 미국의 배출량 기준은 한국·유럽보다 6배 정도 엄격하다. 또 한국과 유럽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미국에 판매된 차량은 시스템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대응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의 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2011년까지 우리 환경부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국내에서 임의설정 규정은 인증 이후인 2012년부터 시행됐고, 관련 처벌 규정은 지난해 말에야 국회에서 통과됐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유무도 폭스바겐의 태도를 가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탓이 재판을 거치기보다 합의를 하는 게 더 저렴한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재판에서는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에게 발생한 손해만큼만 보상을 해주게 될 가능성이 높다.
폭스바겐 사태가 계속 확산되면서 국내 수입자동차 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2일 “국내 소비자들은 수입차 업계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폭스바겐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면 다른 업체들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폭스바겐의 수요가 이동하면서 일부 수입차 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란 시각도 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폭스바겐, 퇴출 수순에도 보상 모르쇠… 왜?
입력 2016-07-1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