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플레이는 아니었다. 45도에서 던지는 투박한 뱅크슛은 백보드를 맞고서 귀신같이 그물망을 흔들곤 했다. 상대방 골대 림에 맞고 튄 공은 언제나 그의 품에 안겨졌다.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전형적인 파워포워드의 모습이었다. 그걸로 한 팀을 19년 동안 이끌었다. 데뷔 후 줄곧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함께 세월을 보냈던 팀 던컨(40)이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었다. 올해 NBA는 ‘마이클 조던의 시대’를 경험했던 두 명의 스타를 떠나보낸다. LA 레이커스에서 20년을 뛴 코비 브라이언트(38)에 이어 던컨마저 무릎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랜 선수생활을 청산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코트에서 보냈던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연이은 퇴장으로 NBA는 또 한 시대와 작별하게 됐다.
던컨에게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농구. 던컨이 농구와 인연을 맺은 건 다름 아닌 고향에 불어 닥친 허리케인 때문이었다. 그는 카리브해의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될 정도로 실력을 갖춘 수영 선수였다. 13살 수영선수 소년의 꿈은 올림픽 출전이었다. 힘차게 물살을 가르던 1989년 9월, 갑자기 버진 아일랜드에 허리케인이 강타했다. 허리케인은 던컨이 꿈을 키우던 수영장을 삽시간에 집어 삼켰다.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은 단 한군데뿐이었다. 연습할 곳을 잃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던컨의 어머니는 이듬해 던컨과 두 딸들을 남겨두고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던컨은 실의에 빠졌다. 뭘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러던 중 그의 매형 리키 로워리가 농구를 해보길 권유했다. 어머니 역시 수영 대신 농구를 해보라는 유언을 남겼던 터였다. 던컨은 그날 이후로 농구공을 잡고 피나는 연습을 했다.
웨이크포레스트대학의 데이브 오덤 감독은 던컨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스카우트했다. 미국 본토에서 본격적인 그의 농구인생이 시작됐다. 211㎝의 큰 키와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1학년 때부터 대학 무대를 접수했다. NBA 구단 관계자들은 던컨이 신인드래프트에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모두가 1순위 후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던컨은 드래프트에 나오지 않았다. 반드시 학위를 받기로 한 생전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던컨은 4년 동안 심리학 전공을 마치고 1997년이 되서야 신인드래프트에 나왔다.
던컨을 얻게 된 행운의 팀은 샌안토니오였다. 던컨은 대학에서 다듬어 놓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NBA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샌안토니오는 곧 던컨의 팀이나 마찬가지였다. 1998년 신인왕에 오르더니 데뷔 2년차에 팀을 NBA 파이널 우승으로 이끌었다. 파이널 최우수선수(MVP) 역시 그의 몫이었다.
던컨은 이후로 19년 동안 골밑을 지키며 샌안토니오의 기둥이 됐다. 그가 샌안토니오 유니폼을 입고 세운 업적은 화려하기만 하다. 1072승 438패를 기록했다. 한 팀에서 1000승 이상을 거둔 선수는 NBA 역사상 오직 던컨뿐이다. 통산 1392경기에 출전해 2만6496득점, 1만5091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팀을 다섯 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다. 두 차례 정규리그 MVP(2002 2003), 세 차례 파이널 MVP(1999 2003 2005)를 수상했다.
던컨은 커리어 평균 19득점 10.8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다. 때문에 NBA에서 꾸준함의 대명사로 통했다. 성실함과 훌륭한 인성, 철저한 팀플레이를 앞세워 샌안토니오 왕조를 구축했다. 덕분에 샌안토니오는 19시즌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던컨이 치른 플레이오프 경기 수만 해도 250경기가 넘는다.
던컨은 그 흔한 은퇴 경기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코트를 떠났다. 그의 마지막 행보는 언제나 골밑에서 묵묵히 팀을 위해 희생했던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흡사했다. 최정상 빅맨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뤘던 ‘공룡 센터’ 샤킬 오닐(은퇴)은 던컨의 은퇴 소식에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직 한 팀만을 위해 모든 걸 쏟아 부었던 이 남자는 이제 진짜 NBA의 전설이 됐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굿 바이, NBA… ‘미스터 기본기’ 던컨 떠나다
입력 2016-07-1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