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개·돼지라는 시대, 교회가 민중에게 응답해야”

입력 2016-07-12 20:54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왼쪽)와 최영실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11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에서 열린 민중신학자 서남동 목사의 32주기 기념포럼에서 대화설교를 하고 있다. 김보연 인턴기자
고 서남동 목사. 국민일보DB
민중신학자 서남동 목사의 32주기 기념포럼이 11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교육원에서 열렸다. 서 목사는 고난 받는 민중들의 ‘한의 소리’를 통해 예수의 말씀을 선포하며 한국 민중신학의 길을 열었던 목회자다.

이날 참석한 80여명의 신학자와 현장 목회자들은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 사태 등 ‘민중’이란 단어마저 위협받는 시대, 위축된 민중신학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최영실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마태복음 12장과 25장을 본문으로 대화설교를 나눴다. 서 교수는 1970년 11월 신학자 모임 당시 서 목사가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알리며 눈물 흘리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것이 우리 민중신학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서 교수는 ‘헬조선’으로 집약되는 현재 우리 사회의 민중 현실을 진단했다. 이어 “민중신학자들과 민중교회 목사, 사회운동하는 목회자들의 만남과 대화, 행동을 재활시켜 새로운 민중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응, 새로운 사회학적·정치경제적 분석과 해석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서 목사님 가르침대로 ‘한 맺힌 자들의 소리’를 듣고 응답해야할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도리어 지배와 경쟁논리를 따라가며 ‘한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엇보다 불의한 지배체제 하에서 죄인 표시를 달고 신음하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용복 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민중신학의 21세기적 지평’에 대한 발제와 감신대 최순양 박사의 논찬, 독일 마인츠대 볼커 퀴스터 교수의 서남동 신학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 강연 등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유예은양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가 참사 전후의 신앙에 대해 증언했다. 박 전도사는 “참사 직후 기도하고 성경책 보는 것, 찬송 부르는 걸 할 수 없었다”며 “모든 기도와 찬송과 성경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곧 지켜주신다는 약속이 있었는데 그게 안 지켜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참사 이후 예수님의 대속과 성만찬의 의미, 교회의 존재 의미,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생각 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담담히 들려줬다.

그는 “아이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괴로웠던 우리와 십자가상에서 서서히 죽어 가신 예수님을 지켜봐야 했던 제자들, 그리고 어머니의 고통이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성만찬을 하는데 포도주에 적신 빵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범벅이 된 모습과 똑같아 보였다”며 “그 빵을 먹으면서 제자들이 비겁하게 숨어서 지켜봤던 예수님의 몸을 내 몸 안에 새겨 넣었던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박 전도사의 증언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의 민중신학이라며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도 발표했다. 죽재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 한국민중신학회, 선교교육원 졸업생 동문회,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기장 생명선교연대가 동참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민중을 개, 돼지에 비유한 처사는 국가를 운영하는 기득권층의 반주체적인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는 반민중적 비인간적 사상으로 무장한 인사들의 기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