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개·돼지가 됐다. 내가 1%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99%에 속하겠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은 관료 사육사가 지도하고 계몽하고 먹여 살리는 거대한 동물농장이 돼 버렸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덕분에 뒤늦게나마 내 신분과 정체성에 대해, 발 뻗고 누울 자리에 대해 고요한 성찰의 기회를 가졌다. 나 기획관이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갖든, 저녁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그의 자유다. 기분은 나쁘고, 핏대는 올릴지언정 법으로 죄를 물을 성질의 것은 아니다. 발언 내용이 민중의 감정을 건드린 악성이기에 좀 과도하게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약한 게 그가 이 나라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고위공무원이라는 점이다. 그는 대한민국 고위공무원의 근간을 이루는 행정고시(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이다. 행시가 뭔가. 시험 단 한 방에, 그의 말대로라면 개·돼지를 먹여 살리는 1%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다. 그러니 안전하게 담 안에 들어와 있는 자로서 신분제 공고화를 거론할 만도 하겠다.
문제는 똑똑하고 사명감에 불타던 이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 샌가 1%로서 개·돼지를 먹여 살리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느냐는 거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서로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고, 그들이 대한민국 정부의 상층부를 독과점하며, 위아래로 끌어주고 당겨주면 당연히 배타적 리그가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과 구분도 된다. 행시의 순혈주의와 기수문화가 본질적으로 배타성을 내재하고 있는 이유다.
최고위 공직자(행시 출신)였던 이와의 저녁자리에서다. 어떤 사고가 났고, 언론이 일제히 정부의 관리가 이렇게 허술하냐고 비판하던 때였다. “언론이 저렇게 비판하면 관료들은 바짝 엎드린다. 대책은 대개 준비돼 있다. 그리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언론의 비판 결과 규제가 생기고, 규제가 생기면 권한과 자리가 생긴다. 사안이 엄중할수록 높은 자리가 생긴다. 그거 얼마나 좋은 건지 민간인들은 잘 모른다.”
대선 캠프에서 권력 중심부로 들어간 어공(어쩌다 공무원)과의 저녁 자리. 규제 혁파를 한창 몰아붙이는 시기였다. “공무원들에게 규제 없애는 정책·법안을 만들어오라면 하세월이다. 권력과 간섭을 줄이는 것이니 꿈쩍도 안 한다. 돌아갈 자기 부처를 생각하면 손을 못 댄다. 그런데 권한이나 자리 늘리는 법안은 며칠 안에 완벽하게 내 책상 위에 와 있다.” 비슷한 얘기는 다른 어공들로부터 몇 차례 들었다.
행시 합격자 대부분은 열심히 노력해서 고위공무원이 됐을 것이다. 행시 출신 관료들의 이익집단화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제도와 시스템에서 오는 문제다. 하여 국가 장래를 위해 행시는 이제 폐지돼야 한다. 최소한 절반 이상은 다양한 절차로 뽑도록 개선해야 한다.
관료 이익집단화는 고위급으로 올라갈수록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피아’는 단적인 예일 뿐이다. 그대로 놔두면 이미 징후가 보이는 신분제가 공고해질 것이다. 내가 아는 많은 공직자들은 능력 있고 올바른 개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관료의 이익집단화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다. 행시를 기반으로 한 순혈적 배타성으로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이 됐다. 순혈주의나 기수문화의 장점이었던 효율성과 일사불란함은 과거에는 장점이었다. 다양성과 열린사회를 추구하는 지금은 부정적 요인이다. 견제와 균형,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정 등이 조직이나 나라를 더 효율적으로 작동시킨다. 이것은 여야의 문제도, 진보 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다양한 절차를 통해 창의적 인재들을 더 넓게 배양해야 한다. 그래야 개·돼지들도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지 않겠는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김명호 칼럼] 개·돼지가 사육사에게
입력 2016-07-12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