島島하게 걸으며 힐링하는 ‘금오도 비렁길’
금오도(金鰲島). 금빛 자라를 닮은 국내에서 21번째로 큰 섬이다. 여수 앞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수많은 섬 중에서도 특히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곳으로 알려졌다.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쓰이는 황장목이 나는 곳으로 조선시대까지 민간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것이 한몫했다.
덕분에 원시림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섬이 검게 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고 해서 ‘거무섬’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한동안 갯바위 낚시꾼들 사이에만 알려져 있었다. 가끔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만큼은 아니겠지만 금오도는 여전히 사시사철 울창한 숲을 내놓는다. 야생화를 비롯한 갖가지 초목들이 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자연식물원이다. 해변 바위 벼랑에는 콩란과 비슷하게 생긴 넝쿨들이 앙증맞게 무리 지어 붙어 있고 이름 모를 풀들이 싱싱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비렁길을 걸으면 머리 위로 드리워진 숲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벼랑 아래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시원함을 가져다준다. 하늘과 바다와 이야기하고 길섶에 피어 있는 풀꽃들과 눈맞춤하며 걸으면 피곤한 줄도 모른다. 더위는 저만치 가고 마음은 파랗게 물든다.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이란 뜻이다. 비렁길은 함구미 항에서 장지까지 산 옆구리를 타고 간다.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나무 하러 다니던 길이다. 비렁길은 2012년 1코스가 개장됐고, 옛길을 다듬어 2014년까지 매년 1개 코스씩 열렸다. 5개 코스로 18.5㎞다. 모두 걸으면 8시간 30분 걸린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오솔길이 넓어졌고 난코스는 나무다리와 계단으로 조성돼 걷기가 편하다. 전망대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길 전체가 바다전망대다.
1코스 출발점은 함구미다. 마을 어귀를 지나 숲길에 접어들자마자 곧 바다가 보였다. 1코스에서 본 벼랑은 해수면에서 40∼50m는 족히 돼 보인다. 푸른 바다와 여수반도가 펼쳐놓는 풍광이 장쾌하다. 미역널방이란 절벽에 이르면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널방은 주민들이 지게에 미역을 지고 와 널던 바위란 뜻이다. 비췻빛 바다를 내려다보면 위태롭기보다 아늑한 느낌이 든다. 여수 앞바다가 가슴에 꽉 들어찬다. 아찔하게 섬을 파고든 기암절벽과 유유히 바다를 떠가는 배를 바라보노라면 몇 시간을 봐도 아깝지 않을 절경이다.
비렁길 1코스에서 초분도 찾아볼 수 있다. 초분은 서남해안의 섬지방에서 발견되는 장묘 형태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하지 않고 나무판자나 돌무지 위에 관을 얹고 초가 형태로 이엉과 용마루를 덮는다. 2, 3년이 지나 살이 썩고 뼈만 남으면 그걸 간추려 다시 매장을 한다. 매정하게 죽은 뒤 단박에 매장할 수 없다는 망자에 대한 애정 등이 깃들어 있다.
비렁길의 백미는 3코스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전망이 좋은데다 곳곳에 숲 그늘이 많아 여름철에도 따가운 햇볕을 피해 걷기에 좋다. 동백숲 터널길로 유명하다. 수령 300세의 노송이을 지나 30분쯤 동백숲 그늘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다 보면 갈바람통 전망대에 닿는다. 90m 높이의 두 절벽 사이에 난 틈으로 솟구쳐 오른 바닷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운이 좋으면 수직 절벽 아래 푸른 물살에서 쇠돌고래과의 상괭이 떼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40여분간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매봉전망대에 오른다. 해발 170m로 비렁길 전체 구간 가운데 가장 높이 올라가는 지점이다. 고흥반도 외나로도 우주센터가 보인다.
바다에서 직접 즐기는 ‘해양레포츠’
비렁길에서 바다를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직접 바다로 뛰어들어보자. 여수에서는 딩기요트, 윈드서핑, 카약 등 해양레포츠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여수 웅천요트마리나는 지난 9일부터 다양한 해양레저스포츠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바다위의 롤러코스터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속도감과 짜릿함을 전해주는 익스트림보트와 제트보트 체험, 살랑대는 바람을 타고 가막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세일링요트, 그리고 피싱보트, 수상오토바이 등이다.
해양레저스포츠 무료 강좌도 인기다. 오는 9월까지 4개 교실에서 요트, 원드서핑, 크루저, 카약, 스쿠버, 스노클링, 고무보트 등 7개 해양레저스포츠 무료 강좌가 열리고 있다. 올해 처음 운영되는 패러글라이딩 체험만 유료다.
더욱 편하게 여수 바다를 즐기는 방법도 있다. 오동도와 돌산공원 사이 바다 위를 지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케이블카를 타면 하늘에서 스릴감 속에 이색적인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바닥이 강화유리로 돼 있는 크리스털 캐빈에 오르면 발 아래 아찔한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탑승을 하면 노을로 물든 하늘이 운치를 더해준다.
여행메모
함구미 가는 빠른 배편은 백야에서… 출발 10분 전 마감, 신분증 필요
전남 여수에서 금오도로 가는 배편은 크게 3개로 나뉜다. 화정면 백야도 선착장, 교통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돌산읍 신기항이다. 1코스가 시작되는 함구미까지 가장 빠른 배편은 백야에서 떠난다. 35분 걸린다. 함구미를 거쳐 직포까지는 1시간. 차량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백야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배를 실을 수 있는 철부선은 많지 않으니 확인해야 한다.
차량을 배에 싣고 가면 섬 안에서 이동은 자유롭지만 코스마다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하고 예약이 안돼 선착순으로 기다려야 한다. 출발 10분 전에 매표를 마감하고, 승선할 때는 꼭 신분증이 필요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을 이용하는 게 좋다.
돌산 신기항에서는 한림해운(061-666-8092)이 금오도 여천항으로 떠난다.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터미널까지 가깝기는 하지만 비렁길 입구인 함구미마을까지 다시 이동해야 한다.
금오도 비렁길 코스를 시작하는 포구마다 택시, 버스 안내 번호가 붙어 있다. 택시비는 코스 구간마다 거리에 따라 다른데 1만∼2만원 정도다. 버스도 대개 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운행하도록 돼 있다.
여수=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