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주원]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입력 2016-07-12 20:08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발생한 영국 내 정치적 후폭풍을 보면서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또한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 반드시 옳은 길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졌다. 정치란 결국 소극적으로는 시류에 편승하거나 강력히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아가 적극적으로는 50%+1표를 선동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행태가 극단적으로 나타날 때 이를 포퓰리즘이라 부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많은 정치적 이슈에서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다수의 국민은 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의 논의과정에서도 이러한 포퓰리즘이 나타난다. 우선 추경안에 복지 부문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추경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복지 확대에 대한 논의는 가을에 편성될 내년도 본예산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경의 주된 목적은 경기 활성화다. 경기가 진작될 수 있는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 일부 복지정책은 저소득층의 높은 소비성향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분배정책은 성장정책과는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추경은 추경이다.

다음으로 재정건전성 논쟁이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잦은 추경 편성으로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정부 부채가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추경 규모가 민간이 생각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것조차도 잉여자금과 늘어난 세수를 이용하는 세입추경 비중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그래서 정부는 국채 발행을 하지 않는 추경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재정건전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국가채무 증가의 주된 원인이 잦은 추경 때문인지, 아니면 저성장으로 세입은 감소하고 있는데 복지 수요가 증가해서인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법인세 인상에 대한 주장도 있다. 부족한 세수를 보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돈을 풀고 다른 쪽에서는 돈을 걷는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자금을 쌓아놓고 투자하지 않는 기업들이 법인세를 더 내는 게 무슨 문제냐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지금 기업들의 실상은 많이 다르다. 이에 해당되는 기업들은 손가락 꼽을 정도다. 대부분은 시장의 공급과잉에 직면해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나눠줄 돈을 기업들에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는가. 기업들은 한국을 탈출할 기회만 찾을 것이다. 기업들은 떠나갈 것이고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 빠르게 없어질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 기업들의 해외생산의존도는 2009년 13.9%에서 불과 5년 만인 2014년에 18.5%로 급등했다. 이는 산업공동화의 대표적 국가인 일본의 2011년 수준을 상회할 정도다. 그러나 선거는 기업이 아니라 국민들이 투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당이나 야당이나 국민들이 좋아하는 반기업 정책을 마다할 리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언제부터인가 최근의 시류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한다. 나아가 오히려 그것에 편승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시장주의를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반시장주의의 선봉에 서 있다. 정부조차도 여론과 언론의 눈치만 살핀다. 정부가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시류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