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퇴직연금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으로 양분됐던 퇴직연금 시장에 다양한 형태의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뜨겁다.
12일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해외 각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을 이미 활용하고 있거나 검토 중이다. 저금리 기조 속에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노후보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사적연금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퇴직연금은 대표적 사적연금 중 하나다. 기업 혹은 근로자 개인 한 쪽이 책임지고 자금을 운용하는 DB형, DC형으로 구분된다. DB형은 기업이 근로자의 연금을 책임지고 운용하고, 연금 지급도 보장한다. DC형은 근로자 스스로 투자 상품을 선택하고 연금을 굴리게 된다.
퇴직연금 운용 형태는 안정성을 중요시한 DB형에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DC형으로 점차 이동하는 추세다. 하지만 DC형은 개인이 투자 책임을 모두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DB형 역시 안전하지만은 않다. 임금상승률이 적립금 운용수익률을 뛰어넘는 현재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회사의 연금 시스템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 DB형, DC형 모두 리스크를 한 쪽에 몰아주는 형태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DB형과 DC형의 특징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퇴직연금이 도입되고 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형이라 불리는 새로운 퇴직연금은 기업과 개인 양측의 리스크를 줄여준다.
미국에선 CB(Cash Balance)형 퇴직연금이 주목받고 있다. CB형 연금은 회사가 연금을 직접 운용하는 형태다. DB형처럼 근로자가 퇴직할 때 회사가 일정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 하지만 기업이 일괄 운용하지 않고 개인별 가상계좌를 활용하는 형태라 기업으로서는 자산운용 부담이 적다.
네덜란드에서는 집단형 DC 퇴직연금을 운용 중이다. 이 연금은 적립금 운용 성과가 좋으면 퇴직급여를 많이 지급하고 나쁘면 적게 지급한다. 적립금 운용 리스크를 근로자가 부담하는 면에서 DC형과 비슷하다. 하지만 회사가 전체 집단의 연금을 모아 하나로 운용한다는 면에서 DB형과 같은 형태다. 기업의 집단운용을 통해 개인 근로자의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영국에서도 기업들의 DB형 연금 운용 부담이 가중되면서 DC형 연금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퇴직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DA(Defined Ambition)형 퇴직연금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DC형에 원리금 합계 보장 등 요소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DB형 퇴직연금이 아직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등 DC형 연금에 대한 인식도 높지 않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정인 연구위원은 “한국도 저금리 기조와 고령화 심화로 기존 DB형 연금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양측이 리스크를 분담한다는 측면에서 노사 합의가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기업·개인 리스크 축소…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 뜬다
입력 2016-07-13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