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보행길 서울역 고가] “주민과 소통하며 함께 만드는 도시재생사업 돼야”

입력 2016-07-12 18:47 수정 2016-07-12 21:38
12일 서울 중구 중림동 고층빌딩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고가 공사 현장. 노후된 상판 철거가 끝나고 조립식 새 상판 설치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내년 4월 보행길로 재개통될 서울역고가는 철도로 단절된 동서 간 사람들의 발길을 잇고 주변으로 확산시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구성찬 기자
하루 5만대 가까운 차량이 오가던 서울역고가가 내년 4월이면 보행길로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서울역 보행고가는 유동인구를 빨아들이고 주변으로 확산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철길로 끊어졌던 서울역 주변은 보행 중심축인 고가와 여기서 뻗어나가는 17개 보행길을 통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와 지역 주민들은 이런 기대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주민들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와 ‘도시재생사업’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 돼야

양병이 서울그린트러스트 이사장은 12일 “7017 프로젝트는 보행고가 조성만이 아니라 주변 지역 활성화로 연결되는 프로젝트여야 한다”며 “그러려면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58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한 ‘7017 시민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양 이사장은 특히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도시재생을 주문했다. 그는 “도시재생 과정에서 주민들의 생활환경이 더 좋아지고 생업이 더 번성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젠트리피케이션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도 미리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서울의 도심 교통정책을 차량 중심에서 보행 중심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가 서울역 일대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마포나루터∼만리재∼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옛 보행길이 1900년대 초 서울역 건설로 인해 차단됐는데 7017 프로젝트는 옛 길을 회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국제관문이었던 서울역의 옛 위상을 상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장치 도입을 제안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한두 번만 환승하면 파리까지도 갈 수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서울역이 다시 세계로 뻗어나가는 꿈을 꾸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서울역과 연결됐던 세계 각국의 역 모형과 사진 등을 전시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인 ㈔서울산책의 조경민 대표는 시민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보행친화도시를 지향하는 7017 프로젝트는 서울 도시정책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인데도 공론(公論)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다”며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이라도 이 사업이 도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시민과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절차를 더 자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재생과 관련해서도 “결정한 뒤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동네의 미래 비전을 주민들과 함께 설계하고 고민하는 작업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걸어야할 이유 만들어 줘야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서울역 보행고가를 걸어야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서울역 주변에 있는 다양한 역사문화자원들이 지역 활성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 천주교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역사공원, 조선시대 중요한 가로(街路)였던 만리재길, 손기정공원 등을 관광자원화하면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역고가를 통해 잊혀진 근대사의 현장들을 다시 우리 삶의 현장으로 엮어내는 작업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프로젝트가 인구유입을 늘려 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지역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김철겸 회현동 주민자치위원장은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프로젝트에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이왕 진행된 사업이니 내년 보행길 개통이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데 보탬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 서쪽 서계동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이 재개발·재건축에 미칠 영향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정길종 서계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서울시가 재생사업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주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주민들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이는 기회를 더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시재생 주체는 지역 주민

백해영 서울역일대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서울역 주변 재생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재생의 주체는 지역 주민이다”고 말했다. 시는 예산과 행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을 뿐이고 지역 활성화의 결정적인 열쇠는 주민들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백 센터장은 “센터는 주민들과의 접점을 만들고, 토론하고, 주민공모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주민자치조직의 싹이 돋고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도시재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행고가가 완공된 이후에도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돼 지속적으로 추진해 가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고가는 내년 4월 개통되지만 센터는 2018년까지 활동하며 서울역, 서계동, 회현동, 중림동, 남대문시장 등 5개 권역의 도시재생을 지원하게 된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