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라동철] 용산공원, 공감대 형성이 우선

입력 2016-07-11 18:45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100여년간 금단(禁斷)의 땅이었던 용산기지. 그 땅이 조만간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평택기지 공정이 마무리 단계이고 지난 5월 미8군 사령부 선발대의 이동이 시작됐으니 이전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주한군사령부와 미8군 본대(本隊)가 내년 상반기 옮겨갈 예정이라고 하니 내년 말쯤이면 이전이 일단락될 전망이다.

용산기지는 우리에게 수난의 땅이요, 오욕의 땅이다.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청(淸)의 군대가 주둔했고 주인이 일본, 미국으로 바뀌었지만 용산은 줄곧 외국 군대의 병참·주둔지였다. 그런 공간이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 앞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반환될 면적은 용산기지 본체부지(약 235만㎡)와 유엔사·수송사·캠프 킴으로 이뤄진 주변산재부지(18만㎡) 등 약 253만㎡다. 미국대사관 부지와 드래곤힐 호텔, 헬기장, 잔류부대 방호부지와 출입통제소 등 30만㎡가 반환 대상에서 제외된 점은 아쉽다. 2012년으로 예정됐던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가 몇 차례 늦춰지면서 한미연합사령부(24만㎡ 예상)도 잔류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기지 전체가 온전하게 반환되지 않아 의미가 반감됐지만 그래도 외세에 짓눌려온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임은 분명하다.

정부는 2007년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하고 추진기획단을 만들어 반환 부지를 국가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 우려된다. 지난 4월 29일 공청회에서 용산공원에 들어설 콘텐츠로 국립과학문화관, 국립경찰박물관 등 7개 정부부처 8개 시설을 제시했는데 공원의 기본이념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별법 제2조에는 ‘용산부지는 최대한 보전하고 용산공원은 민족성·역사성 및 문화성을 갖춘 국민의 여가휴식 공간 및 자연생태 공간 등으로 조성한다’고 명시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여론 수렴이라는 형식은 갖췄지만 콘텐츠 수요 및 설문조사는 겨우 1개월 진행했고 설문 참여자도 34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서둘러 콘텐츠를 선정하고 6월에 확정해 공원조성계획에 반영하려 했다니 그 무모함이 놀라울 뿐이다. “정부부처들의 개별사업을 위한 땅 나눠주기 식 양상” “난개발에 의한 공원의 집단적 훼손 우려” 등 서울시가 쏟아낸 지적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용산구도 조만간 공원 조성 방향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한다. 국토부는 비판 여론이 일자 콘텐츠 확정을 내년 6∼7월로 연기한다고 물러선 상태다. 하지만 콘텐츠가 반영된 공원조성계획을 당초 예정된 내년 8월에서 더 늦춰야 한다.

용산기지는 오랫동안 접근이 차단된 공간이어서 정보가 부족하다. 토양오염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시설물이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수립되는 공원조성계획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각계 전문가가 참여해 기지 내부를 철저히 조사한 후 계획을 세워도 늦지 않다.

용산공원은 국내 최초의 국가공원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한다. 공원의 비전을 공유하고 그에 걸맞은 내용을 채우기 위한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용산구나 서울시와도 제대로 협의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공원조성계획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

용산부지는 100여년을 기다려온 소중한 땅이다.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 늦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질 때까지는 기지의 상처를 치유하며 5년이든, 10년이든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