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 7분 왼쪽 무릎을 다쳐 쓰러졌다. 9분 뒤엔 주저앉았다. 결국 전반 24분경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는 오열했다. 안타까움의 눈물이었다. 눈물은 동료들의 투혼을 싹 틔웠다. 테크니컬 지역에서 다리를 절면서도 동료들을 독려했다. 연장까지 120분이 끝난 뒤 그는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이번엔 감격의 눈물이었다. 경기 내내 ‘포르투갈 판타지’를 총지휘한 그는 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였다.
11일(한국시각) 프랑스 생드니에 위치한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6 결승전. 포르투갈 대표팀은 연장 후반 터진 에데르의 결승골에 힘입어 프랑스를 1대 0으로 꺾고 ‘앙리 들로네’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흑표범’ 에우제비우가 이끌었던 1960년대 대표팀도, 루이스 피구와 마누엘 후이 코스타 등 ‘황금세대’도 이루지 못한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포르투갈 주장 호날두의 부상은 경기의 최대 변수로 작용했다. 전반 7분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을 잡자, 프랑스 디미트리 파예가 달려들며 그의 왼쪽 무릎을 가격했다. 호날두는 쓰려졌고, 의료진이 들어왔다. 응급 치료를 받은 호날두는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전반 16분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실려나간 호날두는 왼쪽 무릎에 붕대를 감고 경기에 나섰다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전반 24분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냈다. 들것에 몸을 실은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양 팀 감독이 다가와 위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졸지에 구심점을 잃은 포르투갈은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경기가 재개되자 포르투갈 선수들은 더 똘똘 뭉쳤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뛰려했던 호날두의 투혼이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라커룸에서 왼쪽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벤치로 돌아온 호날두는 목이 터지도록 동료들을 응원했다. 연장에 들어가자 그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동료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힘을 불어넣었다.
호날두의 독려에 힘을 낸 포르투갈은 연장 후반 4분 기어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후반 34분 교체 투입된 에데르는 상대 페널티지역 외곽에서 프랑스 수비수 1명을 제친 뒤 기습적인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날려 골문을 열었다.
호날두는 벤치를 박차고 나와 테크니컬 지역까지 나와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과 나란히 서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누가 감독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호날두에 비하면 에데르는 무명에 가까운 선수다. 그는 전날까지 A매치 28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3골밖에 넣지 못했다. 지난 시즌 스완지시티에서 전반기 내내 무득점에 그쳤다. 후반기엔 프랑스 릴로 임대를 떠난 후 13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으며 골 감각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번 대회 본선에서 2경기에 교체 투입돼 13분(아이슬란드전 6분·오스트리아전 7분)밖에 뛰지 못했다. 그동안 중용되지 못했던 에데르는 결승전에서 극적인 골을 넣어 영웅으로 떠올랐다. 프랑스로선 자국 리그에서 성장한 선수에게 비수를 맞은 셈이다.
에데르는 경기 후 “경기에 투입되기 직전 호날두는 내가 결승골을 터뜨릴 것이라 말해 줬다. 내게 긍정적인 힘을 줬고, 우리는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페페는 “우리는 경기 중 가장 중요한 선수를 잃었다. 호날두가 경기장 밖으로 나간 후 선수들에게 그를 위해 승리하자고 말했다”고 했다.
산투스 감독도 “호날두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그라운드로 돌아가려했다. 벤치에서도 그는 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호날두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이민의 나라 포르투갈의 대표다. 승리를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바친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만일 호날두가 부상을 당하지 않고 경기를 뛰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호날두는 부상으로 이탈했고, 포르투갈은 더 좋은 경기력을 펼쳐 보이며 이겼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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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포르투갈 대관식’… 울고 웃은 호날두
입력 2016-07-1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