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복싱은 우리나라 유일의 프로 스포츠였다. 김일이 온 국민을 열광시킨 프로레슬링도 있었지만 스포츠라기보다는 쇼에 가까웠다. 가난하던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복싱에 뛰어든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프로권투는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됐다. 이에 보답하듯 김기수 홍수환 유제두 등 세계챔피언이 줄줄이 탄생했다.
부자들의 놀이라는 동계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고, 승마·요트·사이클 등 일부 종목의 경우 어느 정도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접근하기 어렵다. 반면 가장 원시적인 스포츠인 복싱은 유도·레슬링 등 다른 투기 종목과 마찬가지로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투기종목을 배고픈 사람이 하는 운동이라는 의미로 헝그리 스포츠라고 부른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유독 투기종목이 효자 노릇을 한 것은 그만큼 배고픈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다.
요즘 다이어트를 위해 복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금쪽같은 자식을 사각의 링에 세우는 부모가 있을까 싶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깨지고 멍들지 않아도 되는 보다 ‘점잖은’ 운동을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한때 복싱은 메달밭이었다. 홈 텃세가 크게 작용한 탓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86서울아시안게임에서 12개 전 체급을 석권했고, 88서울올림픽에서도 2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동안 올림픽 복싱에서 딴 메달만 스무 개나 된다. 그러나 생활여건이 나아져서 그런지 한국 복싱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다음달 개막하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복싱엔 총 52개의 메달이 걸려 있다. 남자 10체급, 여자 3체급에 체급당 금·은메달 각 1개·동메달 2개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신종훈이 최근 열린 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우리나라 선수는 단 한 명도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참가 68년 역사상 처음이다. 헝그리 스포츠의 추락이 시대적 추세라 해도 헝그리 정신은 살려야 하는데. 이흥우 논설위원
[한마당-이흥우] 한국 복싱의 추락
입력 2016-07-11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