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호] 원전 안전과 민심

입력 2016-07-11 18:53 수정 2016-07-11 22:00

어린 시절 넓은 평야의 주변 산 밑에서 살았다. 봄이 오면 진달래가 피었고 진달래꽃을 따려면 마을 뒤편 조금 깊은 산속으로 가야 했다. 아주 어렸던 그 시절, 문둥이가 어린 아이의 간을 빼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유언비어를 어른들로부터 들은 터라 어린 나는(대여섯 살 정도) 몇몇 친구들과 공포에 가슴 조이며 뒷산에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봄에 진달래가 피어 있는 붉은 산을 보면 그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요즘 울산 앞바다의 지진으로 모든 방송과 지면은 지진과 지진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보다 더 큰 지진이 발생할 경우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원전 안전에는 이상이 없는지 등 문제 제기와 함께 여러 방지 대책을 거론하고 있다. 몇몇 매체에서는 ‘떨고 있는 한반도, 불안, 공포’ 등으로 표현하고 있어 이것을 접하는 국민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해야 하는 회사의 임원으로서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개 불안과 공포는 오해, 정보의 부족,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위험의 크기보다는 보이지 않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더 두려운 게 현실이다. 지진과 원전에도 이러한 등식이 성립되는 것 같다. 원전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몇 가지 사실(fact)을 전해드릴까 한다.

최근 지진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원전 북동쪽 약 183㎞ 떨어진 바다 밑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4개 원전은 초기에 모두 안전하게 정지(운전을 멈추고 원자로가 냉각되는 것)되었다. 그러나 약 40분 후 덮친 쓰나미에 의해 차례대로 냉각을 멈추게 된 것이다. 결국 설계보다 큰 지진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원전은 안전하게 정지되고 있었으나 쓰나미가 전원 공급을 어렵게 했고 냉각펌프를 쓸모없게 만들어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반면에 지진 진앙지보다 실제 더 가까이, 123㎞에 위치한 미야기현 오나가와(女川) 원전의 경우를 살펴보면 3기의 원전은 모두 안전하게 정지되었고 쓰나미가 온 뒤에도 대부분의 설비가 작동되거나 문제없이 복구됐다. 오히려 지역주민이 오나가와 원전 강당으로 대피했다는 사실을 보면 너무나 극명한 차이가 있다.

왜 그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알고 대비했기 때문이다. 오나가와 원전의 경우는 지질 조사는 물론이고 고고학적 문헌조사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역사상 최고로 예상되는 지진과 쓰나미를 기준으로 원전을 해수면 대비 14.7m 위에 건설한 반면 후쿠시마 원전은 해수면에서 10m 높이에 건설했고 이후에도 쓰나미에 취약하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 있었음에도 무시되거나 반영하지 않았다.

이 사례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큰 지진이나 쓰나미라도 정확히 예측하고 대비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과 주민들이 원전으로 대피한 사례에서 보듯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비하고 신뢰를 심어준다면 국민은 극한 상황에서도 원전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두려움에 가슴 조이며 뒷산에 올라가던 기억이 향수어린 추억이 된 것처럼 안전을 최우선으로 원전을 운영하고 극한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설계와 설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면 원전에 대한 민심도 공포와 두려움보다는 필요한 에너지라고 신뢰할 것이다.

이종호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