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아프리카를 위한 아프리카인의 혁신

입력 2016-07-11 19:53 수정 2016-07-11 22:15
새로운 발상과 자신감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아프리카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가난과 부패로 얼룩진 이 대륙의 미래를 외부인의 손에 맡기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변화를 일궈내는 이들이다. 아프리카 토종 식물 성분으로 만든 말라리아 치료제 아피팔루(발렌틴 아곤 홈페이지)와 아프리카 최초의 어린이용 가구를 만든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루 와웨루(시루 와웨루 페이스북).
어린이 가구 ‘펀키즈’ 상표와 가구들(시루 와웨루 페이스북).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것, 저의 오랜 꿈이 마침내 실현됐습니다.”

아프리카 서부 베닌의 의학자인 발렌틴 아곤 박사는 마치 포효하듯이 말했다. 지난달 23일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에서 열린 ‘아프리카를 위한 혁신상(Innovation Prize for Africa)’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 혁신재단이 수여하는 이 상에서 아곤 박사는 대상을 받았다.



아프리카인에 의한 혁신

아프리카에서는 30초마다 어린이 1명이 말라리아로 죽는다. 아프리카 국가는 공공보건 예산의 40%를 말라리아 치료에 쓰고 있다. 아곤 박사는 아프리카 토종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원료로 한 말라리아 치료제 ‘아피팔루’를 개발했다. 기존 치료제보다 훨씬 저렴하고 치료 효과도 탁월하다. 그는 10만 달러의 상금으로 아피팔루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내년까지 아프리카 모든 국가에 이 약을 보급할 계획이다. 아프리카 혁신재단 창립자인 장 클로드 바스토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말라리아와의 전쟁에서 우리가 거둔 이 혁신은 아프리카인의 손으로, 아프리카의 방법으로 아프리카와 온 세계를 위해 일궈낸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가장 젊은 대륙이다. 이 대륙에서는 젊은 생각이 일으키는 변화와 혁신이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 가난, 질병, 피난 같은 비극을 넘어 희망을 만들어가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실천이 성공사례를 만드는 중이다.



아프리카인을 위한 혁신

시루 와웨루는 애기엄마이자 가구공장 사장이고,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이면서 여성들을 위해 교육 사업을 벌이는 사회사업가다.

영국 글래스고대학에서 인테리어 설계를 전공한 와웨루는 졸업 후 고국 케냐로 돌아와 창업했다. 코카콜라 같은 다국적 기업이나 고급 호텔의 인테리어를 맡으며 잘나가는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그녀가 직접 가구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은 5년 전 임신을 하면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였지만 그때까지 아프리카에 어린이용 가구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고급 인테리어용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만 해올 뿐, 아프리카에서 직접 만들 생각도 못했다.

와웨루는 자신의 아기를 위한 가구를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설계대로 나무를 잘라주는 기계를 들여왔다. 기계 사용법은 해비타트 마을을 짓기 위해 아프리카에 와 있던 독일 자원봉사자들에게 배웠다. 이렇게 해서 아프리카 최초의 어린이 가구 브랜드 ‘펀키즈(funKidz)’가 탄생했다.

“굳이 멀리 있는 시장을 개척할 필요 없이 우리 주변의 비싼 수입가구만 대체해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와웨루는 빈민촌 여성들을 목수로 고용했다. 직접 기술을 배우고 가르쳤다. 여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교육용 로봇 K슈퍼히어로를 개발했다. 로봇 모양의 인형에 작은 화면을 넣어 영상으로 간단한 기술을 가르치는 장치다.

혁신은 소박한 곳에서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은 지난달 14일 백악관에서 열린 여성 정상회의에 와웨루를 초대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모인 5000여명의 여성 참석자들에게 “혁신과 기술을 전하는 여성”이라며 와웨루를 소개하고는 뜨겁게 포옹했다.

사실 펀키즈가 이용한 기술은 전혀 어렵지 않다. 선진국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기술이지만, 아프리카의 현실에 맞게 응용해 변화를 일궈냈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10억명이 넘는다. 54개의 국가에서 2000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나 케냐 나이로비 같은 대도시는 유럽 못지않지만, 3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신석기시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빠른 변화가 필요한 이 땅에서는 화려한 장식이나 현란한 언어가 필요 없다. 가장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혁신만이 살아남는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나이로비의 재래시장에선 스마트폰이나 신용카드가 없어도 낡은 3G폰으로 전자결제가 이뤄진다. 은행도 찾기 어려운 곳에서 휴대전화로 현금을 보내는 M-페사라는 서비스 덕분이다.

지난해 요하네스버그에 아프리카의 첫 사무실을 연 페이스북은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10개국 중 7개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고, 그 경제력의 절반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나온다”며 “혁신적인 사업가들의 대륙인 아프리카는 이제 경제 발전의 초기 1%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무궁무진한 변화가 가능한 혁신의 땅, 그곳이 아프리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