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웨이 한국 첫 개인전, 거친 붓질이지만 매끈한 화면… 중국인의 우울한 내면 우회적 표현

입력 2016-07-11 21:20
학고재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갖고 있는 중국 작가 궈웨이의 ‘밤-1’(2014). 학고재갤러리 제공
'노인'(2013). 학고재갤러리 제공
하나 같이 속도감 있는 붓질로 뭉갠 얼굴들이다. 코와 입의 경계도 분명치 않다. 마스크 팩을 한 소녀도, 펑퍼짐한 얼굴의 아줌마도, 지친 기색의 지식인도…. 남자든, 여자든, 청춘이든, 중년이든 상관없이 현대 중국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그렇게 익명의 얼굴로 떠다닌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중국 작가 궈웨이(57·사진)의 국내 첫 개인전 ‘인간에서 인류로’가 열리고 있다. 중국인의 우울한 내면을 검은색, 회색, 갈색 등 어두운 색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는 것이 첫 인상이다. 어쩌지 못한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려는 듯 나이프로 쭉 내리 그은 듯한 기법도 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만, 이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표현주의 작가라는 생각에 식상함이 피어오른다. 만약 이 중국 작가의 회화가 여기에 머물렀다면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의외의 반전이 있다. 덕지덕지 바른 두툼한 마티에르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화면이 매끈하기 그지없다. 꿈틀거리는 듯한 붓질 자국은 실은 정교하게 계산된 화면 분할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나이프 자국도 알고 보면 그렇게 길게 드로잉 한 화면 안을 말끔하게 메워 넣은 것이다.

이런 시각적 착시에 대해 작가는 “쓰촨미술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한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목판화가 주는 선의 맛을 캔버스 그림에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중국 쓰촨성 충칭시에서 태동한 상흔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그림은 일종의 저항적 행위다. 베이징에서 차로 쉬지 않고 24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하는 중국 서남쪽 충칭시는 문화혁명기에 지식인들을 하방운동으로 내려 보냈던 정치적 유배지였다. 문화혁명이 끝난 후 이곳에서는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자 하는 예술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상흔미술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현대 중국을 살아가는 그의 화폭 속 개인들은 ‘시대의 침울’을 말하듯 누구도 웃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거나 옆모습이거나 아예 뒷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우상인 엥겔스조차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형체를 지워버린다.

내면을 표출한 듯한 화면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매끈하기 그지없는 화면은 현대 중국인의 성격을 읽는 코드 같다. 결국 그 분노를 터뜨리지 못하고 체제에 순응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초상처럼 읽힌다. 야성을 잃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불 꺼진 도심을 걷고 있는 사자 그림이 유독 눈에 띈다. 중국인의 그런 무력감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8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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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