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클래식계에서 ‘부는 악기’는 오랫동안 불모지로 통했다. 성악·바이올린·피아노 부문에서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울시향을 비롯한 국내 오케스트라가 관악 파트에 해외 연주자들을 다수 고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해외 오케스트라 관악 파트 수석을 맡는 한국 연주자가 나올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난해 북유럽을 대표하는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의 호른 종신수석이 된 김홍박(34)은 변화하는 한국 금관악기를 대표하는 연주자다. 그가 오는 14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과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7년만의 단독 리사이틀을 연다. 리사이틀의 주제는 ‘프랑스’. 생상스, 구노, 케클랭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10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 관객에게 호른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작품을 찾다보니 프랑스 작곡가들의 인상주의 곡이 떠올랐다. 게다가 호른이란 악기가 원래 프렌치 호른의 약자라서 중의적 의미로 ‘프랑스’라는 테마를 잡았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성악을 전공하던 누나의 영향으로 성악가를 꿈꿨던 그는 14세 때 호른을 처음 접한 뒤 마음을 바꿨다. 그는 “처음 호른 소리를 들었을 때 사람이 노래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호른이야말로 내 목소리처럼 호흡하며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흡의 미묘한 차이에 영향을 받는 호른은 실수 없이 연주하기가 어렵다. 연주자의 긴장 정도는 물론 입술 상태 등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역시 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내 자식에겐 절대로 시키고 싶지 않은 게 호른일 만큼 연주자로서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희열을 느끼게 만드는 악기도 없다”고 웃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로 유학갔던 그는 2007년 서울시향 부수석으로 입단했다. 평소 존경하던 정명훈 당시 시향 예술감독의 권유 때문이다. 하지만 클래식 본고장에서 실력을 겨뤄보고 싶어 3년 뒤 다시 유럽행을 택했다. 이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으면서 영국 런던심포니, 일본 요미우리 닛폰 심포니오케스트라 등 명문 오케스트라의 객원 수석, 스웨덴 왕립오페라 제2수석으로 활동했다.
그는 “어릴 때 서울시향에 입단하다보니 유럽 활동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았었다. 더 늦어지면 도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서울시향을 그만뒀다”면서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으로 활동하다가 오슬로 필하모닉을 선택한 것은 최근 클래식계에서 북유럽의 여건이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슬로 필하모닉은 마리스 얀손스 등 거장이 거쳐갔으며 현재 바실리 페트렌코가 이끌고 있다.
금관악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롤모델로 통하는 그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다. 특히 실수에 대한 부담 때문에 너무 조심하다가 음악적인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나도 연주자로서 앞으로 호른의 한계에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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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호른 연주자 김홍박 “도전하다 보니 이 만큼 와 있네요”
입력 2016-07-11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