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AIIB 부총재직 날린 홍기택 파문… 정부 책임 크다

입력 2016-07-10 17:25
중국 주도로 올 1월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한국 부총재직’이 결국 날아갔다. AIIB가 돌연 휴직한 홍기택 리스크담당 부총재(CRO) 보직을 국장급으로 강등하고 새 부총재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AIIB는 최근 홈페이지에 신설 재무담당 부총재, 재무국장, 회계국장, 위험관리국장직 모집 공지를 냈다. 이는 CRO직이 위험관리국장으로 격하되고 기존 CFO(최고재무책임자)직이 부총재급으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새 부총재 공모는 사실 요식행위다. 이 자리에는 지난달 CFO로 선임된 프랑스 국적의 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가 내정돼 있어서다. 현재 AIIB 부총재는 인도 독일 한국 인도네시아 영국 등 5개국이 맡고 있다. 여기서 한국 몫의 자리가 프랑스 몫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가 홍 부총재 후임에 한국인이 선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빈말이 됐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홍 부총재가 갑작스러운 휴직에 들어갈 때부터 ‘휴직=사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공모를 통해 홍 부총재 사임은 사실상 확정됐다. 이로써 지분율 5위의 AIIB 분담금으로 37억 달러(약 4조3000억원)라는 거액을 쏟아붓고 차지한 부총재직이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사라지게 됐다.

국제무대에서 망신을 당한 1차적 책임은 돌발 행동을 벌인 홍 부총재에게 있다. 산업은행 회장을 지낸 그는 청와대 서별관회의와 관련된 인터뷰로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로 책임 문제가 대두되자 돌연 6개월간 휴직계를 냈다. 한데 이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휴직 이후라도 부총재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야 했음에도 정부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 금융실무 비전문가로 자격과 능력이 없는 그를 AIIB 부총재로 민 정부의 ‘국제 낙하산’ 인사가 원죄다. 대학 교수 출신인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지낸 직후인 2013년 산업은행 회장에 임명될 때도 낙하산 및 자격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런 사람을 누가 AIIB 부총재로 보냈는지, 휴직 사태는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등 진상을 정부 차원에서 규명해 공개하고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