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일본군 위안부 같은)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녀상은 평화의 상징이자 내 분신과도 같은 존재예요.”
아픈 몸을 이끌고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사진) 할머니가 10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유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아산 선장에서 태어났다. 꽃다운 나이인 15세에 일제의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60리를 도망 다녔지만 결국 붙잡혀 1943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1년간 일본군에 인간 이하의 고통을 당했다.
이후 오사카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하던 중 일제가 패망하면서 오사카 주민의 도움으로 귀국했다. 광복 이후 보따리 장사 등으로 생계를 이어온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한평생을 불면증과 심장병 등에 시달렸다. 2009년 폐암 판정을 받고 2012년 경기도 광주 퇴촌면 나눔의 집에 들어온 할머니는 지난해 7월 피해 할머니와 가족 등 10여명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일본 왕실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10개 전범 기업, 아베 신조 총리, 산케이 신문을 상대로 전쟁 범죄를 고발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과 2015년 세종대 박모 교수가 ‘위안부는 군인들을 돌보는 존재였다’는 내용의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해 논란이 됐을 때는 “당장 책을 전부 폐기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판에 증인으로 여러 차례 출석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위안부 피해자 의사나 동의가 없는 한·일 정부 합의안에 대해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면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만족 못한다”며 우리 정부에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았다.
생전에 유 할머니는 “후원자들의 도움에 보이지 않는 고마움과 사회에 대한 죄송한 마음, 자식들에게는 부족한 엄마로 마음속에 늘 그늘이 있다”며 “아픈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되기에 (위안부) 피해 역사를 유네스코에 등록해 전 세계인들이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0명으로 줄었다.
이날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들은 유희수(26·여·대학생)씨는 “소녀상과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할머니께서 생전에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죄를 듣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며 “그러나 피해자 할머니들의 못다 한 꿈을 이뤄주는 것이 우리들의 숙제이며 역할”이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1남3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차려졌고 발인은 12일 오전 8시,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광주=김연균 기자 ykkim@kmib.co.kr
치유의 그날 못보고… 또 꽃이 졌습니다
입력 2016-07-10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