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주도 ‘당·정협의체’도 고소득 피부양자 ‘무임승차’ 막는 개정안 내놨었다

입력 2016-07-11 04:00

현행 건강보험은 모순투성이 제도다. 연금과 은행 이자로 연 수천만원 수입이 있는 사람도 피부양자가 되면 건강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집을 3채 이상 가졌는데도 직장에 다니는 아들, 딸 덕택에 건보료를 내지 않는 사람이 68만명이다. 은퇴 후 소득이 없는데도 보험료가 두 배로 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지역가입자가 되면 직장 가입자와 달리 재산과 자동차 등에 보험료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건보료 민원은 지난해 6700만건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불합리성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구성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이 2013년 7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만든 ‘기획단 안’이 있다. 새누리당과 복지부, 외부 전문가가 지난해 2월부터 6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만든 ‘당·정 협의체 안’도 있다. 지난 7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부과 체계의 전면적 개혁을 담은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내놨다.

새누리 안도 고소득층 건보료 올라

지난해 당·정 협의체가 구상한 안은 기획단 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안을 적용해도 기획단 안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낮아지고 고소득층의 보험료가 오른다는 게 당·정 협의체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달 작성한 ‘2016 주요 정책현안’을 보면 기획단 안은 소득이 많은 피부양자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금은 금융소득, 근로(기타)소득, 연금소득 등 소득별로 연 4000만원을 기준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판정하고 있다. 즉 각각 소득이 연 4000만원이어서 총 1억2000만원을 버는 사람도 가족 중 직장가입자가 있으면 피부양자가 된다.

이 기준을 ‘종합과세소득’으로 바꾼다는 게 기획단 안의 핵심이다. 종합과세소득 4000만원을 기준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판정하면 현재 연 소득 4000만∼1억2000만원 구간 안의 사람들은 지역가입자가 된다. 이른바 고소득 피부양자도 건보료를 내게 되는 것이다.

기획단은 또 봉급 말고 수입이 있는 ‘부자 월급쟁이’가 보험료를 더 내게 했다. 지금은 회사에서 받는 월급 외에 소득이 연 7200만원 이상인 사람만 보험료를 더 내고 있다. 이 기준을 2000만원 등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게 기획단 안이다.

지역가입자에 대해선 재산에 대한 건보료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재산에 대해 일정 금액을 공제한 뒤 보험료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저소득·무소득 세대에는 정액의 최저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당·정 협의체 안도 기획단 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10일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복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여 기획단 안 중 상당 부분이 수용됐다. 상당히 괜찮은 안”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올 초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게 제출한 ‘당·정 협의체 경과보고’ 자료에는 “고소득 직장가입자의 보수 외 소득에 대한 부과 기준을 강화한다는 데 공감했다” 등의 표현이 있다.

더민주 “소득 기준으로만 부과”

더민주가 발의한 법안은 기획단 안이나 당·정 협의체 안보다 훨씬 더 ‘소득 중심적’이다. 더민주의 안은 직장·지역 가입자 구분을 폐지하고 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내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전체 세대의 90∼95%는 보험료가 내려가고 5∼10%는 올라갈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게 되면 건보료는 소득이 있는 곳 어디서든 부과된다. 근로소득뿐 아니라 사업·이자· 배당·연금·기타·퇴직·양도·상속·증여 소득과 분리 과세되는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 등 파악이 가능한 모든 소득에 보험료가 매겨지는 것이다.

더민주는 과세소득 자료가 없는 세대에는 가입자 대표로 구성되는 ‘가입자위원회’가 기준을 정해 최저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형평성 논란이 있는 피부양자 제도는 완전히 폐지한다는 게 더민주의 구상이다.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에 영입된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이 안을 주도했다.

전문가들은 더민주 안이 이상적이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소득 중심으로 부과하는 게 맞지만 현재 노인의 국민연금 월 평균 수급액이 40만원인 상황”이라면서 “국민연금 제도가 좀 더 성숙해야 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소득이 더 많이 파악된 계층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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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