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 총기 사고로 악명이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콤프턴의 빈민촌 우범지대. ‘흑진주’ 자매는 목숨을 걸고 아스팔트 도로에서 테니스 훈련을 했다. 변변한 코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해 레슨을 받을 돈도 없었다.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테니스에 자매가 입문한 건 우연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TV에서 버지니아 루지치(루마니아)가 테니스대회 우승상금으로 3000달러를 받는 것을 보고 두 딸에게 라켓을 사줬다. 아버지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은 두 흑진주는 10대 후반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비너스(36)·서리나(35) 윌리엄스 자매는 이제 3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서리나는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랭킹 4위 안젤리크 케르버(28·독일)를 2대 0(7-5 6-3)으로 제압하며, 7번째 윔블던 우승컵을 안았다.
서리나는 이번 우승으로 자신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천하에 알렸다. 그는 2014년 US오픈부터 2015년 윔블던까지 메이저대회 4연속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US오픈 4강에서 탈락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올해 호주오픈 결승에서 케르버에게 패배했고, 프랑스오픈에선 가르비네 무구루사(23·스페인·세계랭킹 2위)에게 무릎을 꿇었다.
한물갔다는 소리를 들은 서리나는 이번 대회 2회전에서 3세트까지 가며 고전한 걸 제외하고는 상대선수에게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놀라운 경기력을 펼쳤다. 이번이 개인 통산 22번째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다. 호주오픈 6번, 프랑스오픈 3번, US오픈 6번, 윔블던 7번 우승을 차지해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프로 선수의 메이저대회 참가가 허용된 1968년 이후 메이저대회 여자 단식 최다 우승과 타이기록으로, 이 기록은 슈테피 그라프(47·독일)가 혼자 보유하고 있었다.
서리나는 우승 후 “메이저대회 22번째 우승이라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그걸 생각하지 않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결국 힘들게 우승을 얻었고, 더욱 달콤하다“고 활짝 웃었다.
2015년 6월 최고령 세계랭킹 1위 신기록을 세운 서리나는 이 기록을 늘려가고 있으며, 자신이 보유하던 여자 단식 최고령 우승 기록도 경신했다.
서리나는 여자복식 결승에서도 언니 비너스와 호흡을 맞춰 티메아 바보스(헝가리)-야로슬라바 시베도바(카자흐스탄) 조를 2대 0(6-3 6-4)으로 꺾고 2관왕에 올라 기쁨이 더했다. 둘은 메이저 대회 복식 결승에 14번 진출해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자매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도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2000 시드니, 2008 베이징, 2012 런던올림픽에서 여자 복식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단식 우승 상금 200만 파운드(약 30억원)를 받은 서리나는 복식 상금 절반을 합쳐 총 217만5천 파운드(약 32억 7000만원)를 챙겼다.
서리나는 인종차별과도 싸워야 했다. 2001년 BNP 파리바오픈에서 서리나는 언니와 준결승에서 맞붙게 됐다. 하지만 비너스가 부상을 이유로 기권했다. 그러자 자매가 힘을 빼지 않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킴 클리스터스(33·벨기에)와 결승에서 맞붙은 서리나는 야유와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들으며 경기를 해야 했다.
서리나는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성공한 선수일 뿐만 아니라 무하마드 알리(복싱), 마이클 조던(농구)처럼 흑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블랙 히로인’이다. 서리나는 지난해 12월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스포츠인’에 선정된 뒤 미국의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마야 안젤루의 시를 일부 인용해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내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소, 고개를 숙이고 눈을 아래로 내리는 나를? 어깨가 눈물 흐르듯 떨어지는 것을? 내 영혼의 눈물로 약해져는 것을? 내 자신만만함이 당신을 화나게 만드나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당신의 증오심으로 나를 죽여도 되지만, 여전히 공기처럼 나는 일어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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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갈수록 빛나는 서른다섯 ‘흑진주 서리나 윌리엄스’
입력 2016-07-1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