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손병호] 오바마와 발레 파킹

입력 2016-07-10 17:29

그가 백화점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졸졸 따라다녔다. 물건을 훔칠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거나 이 정도로 좋은 백화점에 그가 들어온 게 이상해서였을 것이다. 그가 발레(valet) 파킹으로 맡겨둔 차를 돌려받기 위해 호텔 정문 앞에 기다리고 있을 때 차에서 내리는 숱한 백인들이 그에게 차 열쇠를 맡기려 했다. 양복 입은 발레 파킹 주차요원이라고 생각해서다. 가장 가슴이 두근거렸을 때는 순찰차가 그의 승용차를 갓길로 밀어붙이며 정지시켰을 때다. 아무 이유도 없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겪은 일들이다. 일부는 그가 일리노이주에서 상원의원을 할 때 겪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밤거리에서 흑인을 만날 때 움찔한다. 흑인의 옷섶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서다. 나이가 11세, 12세여도 마찬가지다. 어린 흑인이라고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밤에 흑인이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들면 10대 중 9대는 그냥 지나친다. 흑인이 명품 상점이나 귀금속 상점에 나타나면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된다. 밤에 흑인이 슈퍼마켓에 가면 주인의 손은 비상버튼 또는 총기 쪽으로 간다.

숙박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airbnb)에서 흑인이 집을 빌리려 하면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흑인은 이름과 사진을 ‘흑인이 아닌 것처럼’ 바꿔서 빌린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늘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해야 한다. 경찰에게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증명해야 한다. 백화점에선 훔치러 온 게 아니며, 또 훔친 신용카드로 구입하러 온 게 아님을 내비쳐야 한다.

흑인이 다수가 아닌 학교에선 불량 학생이 아님을 적극 보여줘야 한다. 직장에서도 ‘너무 흑인스럽지 않은 흑인’임을 드러내 동료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좋은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기 전 선입견의 장막에 의해 진입 자체가 제한된다.

그러다보니 흑인들은 늘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2005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 흑인 사회에선 “루이지애나에서 흑인을 몰아내려고 누군가 일부러 둑을 터뜨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차별을 더 많이 받는다는 생각에 사회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흑인이 많다. 그 반항과 저항이 학업중단으로, 가정폭력으로, 범죄로 표출되면서 결국 저학력자, 가정파탄자, 전과자의 길로 이어진다. 흑인 낙오자들은 자녀들까지 비극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흑인에게 경찰은 그런 사회적 차별을 가하는 대리인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불시 검문 때 삐딱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는 흑인이 다수다. 경찰의 흑인 사살은 총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의 문제다. 그 차별을 시정하기에는 어쩌면 너무 늦었는지 모른다. 흑인 대통령이 들어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시켜야 하고, 또 제도적으로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경찰의 흑인 사살 사건은 우리 사회 내부를 돌아보게 한다. 비정규직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 시간제 근로자들의 낮은 최저임금, 고졸자에 대한 소홀한 대우, 세입자들에 대한 횡포,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결손가정 및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이 사회 내에서 자리를 더 잘 잡아나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경찰 총에 죽는 사람이 없을 뿐이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차별에 죽어 나가는 사람이 미국 못잖을지 모른다.

손병호 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