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짜리 딸애랑 싸웠어요. 제가 과연 아이의 사춘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사춘기 아이는 부모의 자존감을 종종 위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갑게 부모를 찾던 아이가 어느 날 자기 방문을 잠그고, 아무리 말을 걸어도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전혀 이해 안 되는 돌발행동을 하고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부모의 훈계를 무시한다. 부모는 답답함을 넘어 자신의 존재가 모조리 거부당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물리적 힘과 엄한 말을 통한 통제, 혹은 칭찬과 보상. 자녀들에게 잘 먹히던 이전의 방법들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통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마음으로 시도한 대화는 잔소리로 치부되고 가끔씩 아이의 눈에 나타나는 살기는 부모를 얼어붙게 만들어 버린다.
부모도 인간인지라 답답함과 울분을 참지 못해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격한 분노와 함께 쏟아낼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부모는 자신의 밑바닥을 본 것처럼 심한 자괴감에 휩싸인다. 이젠 아이가 아니라 부모인 내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과연 내가 이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부모로서 자격이 있나?’ 이러한 자괴감은 곧 자존감의 상실로 이어진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가 클 때 부모도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12세 아이와 싸우는 40세 엄마는 사실 ‘부모 나이’ 12세의 과정을 겪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공을 들이면 전문가라는 느낌을 가질 만도 한데 부모 역할만큼은 늘 새롭고 버겁다.
좋은 부모의 근본적 속성은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변화하는 ‘되어감(becoming)’에 있다. 어느 누구도 ‘난 이런 부모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신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고정되는 순간 부모로서의 성장은 멈춘 것이고 부모의 관점은 굳어져 버린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사춘기는 ‘부모가 자신을 직면하고 성찰할 기회’를 선물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전에 해왔던 방식, 잘 안다고 여겼던 나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기존 이해의 흔들림이 필요하고 부모로서 자신감이 상실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부모로서 내가 과연 자격이 있는가? 내가 잘하고 있나’를 고민하는 분들을 볼 때 나는 개인적으로 안심하게 된다. 오히려 ‘나는 내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분들이 우려스럽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순간 새로운 만남과 변화를 요구하는 특별한 경험인데 여기에 어떤 정답이나 일관된 매뉴얼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와 함께 커가는 부모는 자신의 자존감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자존감은 내가 아이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다. 자존감은 그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배우고 부모 자신이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한영주<한국상담대학원대 15세상담연구소장>
[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부모의 자존감
입력 2016-07-11 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