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미안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방의 2차선 도로는 그래도 다행이지만 4차선 도로나 고속도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자동차가 생기고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닌 들어가면 안 되는 위험한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이루고 사는 문명의 삶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본디 길은 어느 목적지를 가는 과정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삶의 만남과 소통은 함께하는 모든 존재의 소중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이 생명과 생명을 잇고 함께하게 하는 생명과 평화의 장이 아니라 무서운 단절과 소중한 것을 무심코 지나치게 하는 아주 나쁜 것으로 세상을 크게 난도질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생명과 평화를 담아내는 진리와 같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 역시 생명과 평화로 물들어야 하고 그런 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평화나 생명이라는 말이 일상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구호나 기도만이 아닌 삶의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되고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생명이 살아나고 평화가 깃든 것처럼 우리의 교회가 그러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교회가 자리한 곳에는 이렇게 생명과 평화의 노래가 불러져야 하고, 그 안에서 뭇 생명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생명과 평화는 돈이나 물질로 되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나 특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한 복음과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만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 합당하지 않을까요.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말한 것처럼 교회는 정체성과 상관성을 균형 있게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놓고 우리는 모든 교회가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다른 가르침을 주지 않으셨고, 두 길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이 그러셨듯이 상관성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다양하고 남다른 저마다의 교회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에 남다른 사명과 열심을 가지는 교회, 선교나 복지에 집중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는 교회, 문화나 사회, 생태와 자연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창조은총을 나누는 교회 등 얼마든지 소중한 목회의 현장을 찾아가 생명과 평화의 상관성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틀리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는 속 깊은 신앙과 이해입니다. 예수님의 일관된 정체성과 세상에서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상관성을 교회는 따라야 합니다. 지구공동체에 변방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서로가 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라며 소리를 높이지만 주님을 통해서 본다면 그 어느 곳도 변방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때로 세상의 골칫덩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교회만의 논리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과 평화여야 합니다.
백영기 목사 (청주 쌍샘자연교회)
◇약력=△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환경보전위원회 위원장
[오늘의 설교] 생명과 평화를 담은 교회로
입력 2016-07-10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