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페스트’(7월 22일∼9월 30일)는 올여름 뜨거운 대형 뮤지컬 대전에서 유일한 창작 초연작이다. 알베르 카뮈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한국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인 서태지(44)의 노래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작품이 제작되기까지 두 사람이 산파 역할을 했다. 제작사 스포트라이트의 김민석(41) 대표, 그리고 송경옥(46) 책임프로듀서다.
김 대표는 서태지의 매니저 출신으로 서태지 콘서트,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 등 대중음악 콘서트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송 프로듀서는 창작뮤지컬 ‘명성왕후’를 제작한 에이콤에서 오랫동안 제작 부문을 이끌어 왔다. 두 사람이 서태지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한 건 2010년. 그로부터 6년 만에 ‘페스트’가 나오게 됐다.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 대표는 “주변에서 왜 무모한 일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국내를 포함해 전세계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의 성공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서태지씨에게도 누가 되기 때문에 정말 오랫동안 준비한 끝에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7년 송 프로듀서가 소속됐던 에이콤이 서태지 컴퍼니에 서태지의 노래로 뮤지컬로 만들자고 제안한데서 시작됐다. 하지만 에이콤이 제시한 대본을 서태지가 만족스러워하지 않아서 뮤지컬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 대표는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와 함께 은퇴 선언했던 서태지씨가 2000년 컴백했지만 방송이나 공연을 자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태지 음악을 듣고 싶은 팬을 위해 뮤지컬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매니저로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보다 한층 높게 평가하는 솔로 시절의 음악을 대중이 새롭게 주목해주길 바랐다”면서 “에이콤이 처음 제안했던 뮤지컬이 무산된 이후에도 꾸준히 제작을 염두에 두다가 창작뮤지컬 제작 전문가인 송 프로듀서의 도움을 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이후 실제 제작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대본 때문이다. 사실 서태지는 처음엔 자신의 음악을 뮤지컬로 만드는 것에 부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록밴드 그린 데이의 노래로 만든 ‘아메리칸 이디엇’을 보면서 편곡을 통한 음악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비판, 저항, 도전, 연대 등 자신이 추구해온 메시지가 뮤지컬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노랫말에 맞추기 위해 억지스러운 스토리를 만들었다가 실패했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송 프로듀서는 “그동안 6∼7개의 대본이 나왔지만 서태지씨가 모두 탐탁치 않아 했다. 그러다가 2014년 안재승 작가가 카뮈의 소설 ‘페스트’로 만든 원안을 읽은 뒤 처음으로 마음에 들어 했다”면서 “서태지 음악과 카뮈 소설 모두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통해 시스템의 통제 안에 있는 인간의 고뇌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히 ‘페스트’도 서태지씨가 ‘노(no)’ 하면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오케이가 났다”고 웃었다. 이어 “원안이 나온 이후에도 얼마 전까지 계속 대본을 업그레이드 했다”고 덧붙였다.
페스트가 휩쓴 알제리 항구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분투를 그린 카뮈의 소설은 뮤지컬에선 가까운 미래의 첨단도시 오랑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것으로 각색됐다. 김 대표는 “뮤지컬 ‘페스트’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범하기 쉬운 오류, 즉 가사에 맞춘 뻔한 장면이 없다. 또 서태지 음악이 매우 다양하게 편곡돼 새롭게 다가온다”며 “이번에 흥행은 잘 안되더라도 못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스타 마케팅이 대세인 요즘 뮤지컬계 분위기와 달리 ‘페스트’에는 소위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지 덕분에 창작 초연치고 티켓 판매가 나쁘지 않다. 송 프로듀서는 “스타의 힘에 의존하는 대신 작품의 완성도로 관객에게 평가받고 싶다. 초연 이후에도 업그레이드시켜 오래도록 살아남는 뮤지컬로 만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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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뮤지컬 ‘페스트’ 서태지 노래 가사에 맞춘 뻔한 장면은 없다”
입력 2016-07-10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