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공동체와 경찰 사이 갈등이 지금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흑인 민권운동 이후인 1970∼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에 일어난 마이애미 폭동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오토바이를 탄 34세 흑인 청년 아서 맥더피가 과속 단속을 피하려다 백인 경찰 4명에게 맞아 두개골이 부서져 사망하면서 시위가 촉발됐다. 이들 경찰 4명이 당시 맥더피가 저항했다는 이유로 무죄로 방면되자 마이애미에서만 수십만명이 들고일어나 폭동을 벌였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은 근 30여년간 있었던 흑인폭동 사건 중 최대 규모다. 91년 캘리포니아주 LA에서 과속 단속에 걸린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구타하는 영상이 공개된 데 이어 같은 해 한국계 상점 주인에게 도둑으로 오인받은 16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가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언론이 뒤늦게 집중 조명하며 갈등이 폭발했다. 이 폭동으로 한인 상가가 집중 공격을 당했고 40%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최근에는 2014년부터 2015년에 걸쳐 3차례 일어난 퍼거슨 소요 사태가 꼽힌다.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 지시에 따랐음에도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에게 사살되자 해당 경찰의 신상공개와 처벌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미주리주 곳곳에서 벌어졌다. 주방위군까지 동원된 끝에 사태는 일단락됐으나 마이클 브라운 사망 1주기였던 지난해 다시 시위가 벌어져 총격 사태까지 이어졌다. 같은 해 4월에도 경찰에 구금됐다가 사망한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 뒤 시위가 격화돼 약 500명이 체포됐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LA폭동 25년 지났지만… 수시로 터지는 흑백갈등 뇌관
입력 2016-07-08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