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한신대학교 교수는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ment·분노)’ 표현을 빌어 우리 사회를 ‘울혈사회’로 묘사했다. 국민이 화병에 걸린 사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화를 내고, 남 탓을 일삼는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저지르는 증오범죄도 차츰 늘고 있다. 윤 교수는 그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성과 부당한 대우를 꼽았다. 구성원 대다수가 그 사회를 정의롭지 않다고 여기면 상호신뢰, 즉 사회적 자본의 부족으로 경제성장도 어려워진다.
정의의 부재, 특히 소득 불평등과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여러 논의들이 최근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노사공포럼’ 최신호 권두논단에서 정의는 과정의 공정성과 결과의 공평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전자를 위해서는 공교육 확대 등 기회균등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후자를 위해서는 복지정책 확대와 조세제도를 통한 소득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이 교수는 토마 피케티 등을 인용해 국민소득에서 상속 및 증여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세습자본주의가 나타났다고 지적하고,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긴 상황에서 시장의 역할은 뒤틀린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양질의 공교육을 골고루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계층이동을 활발하게 하는 첩경이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0월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 기조연설을 통해 “현재 38%인 최고소득세율을 65%나 70% 정도까지는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지난달 27일 “세계적으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코 좌파라고 보기는 어려운 김 대표가 기본소득 도입을 언급할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그는 7일에도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 관련 대회에 참석, “미래세대를 위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일부도 증세 필요성을 지지하고 나섰다. 기본소득과 증세에 대한 보수층의 반대는 여전하지만 격차 해소와 분배정의가 시대정신이 돼 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임항 논설위원
[한마당-임항] 울혈(鬱血)사회와 분배정의
입력 2016-07-08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