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벽전’ 팸플릿… 김환기·이우환 편지…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한눈에

입력 2016-07-10 17:30
'벽전'은 구상화 중심으로 흘러가던 국전(國展)에 반기를 들고 1960년 서울대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60년 미술가협회'가 덕수궁 돌담길에서 연 전시로, 추상화가 주로 출품되었다. 사진 속 인물은 당시 멤버였던 서양화가 김형대씨.
'벽전'으로 불렸던 '제1회 60년 전' 팸플릿.
“유난히 추위를 느끼는 것은 아직 투쟁심이 약한 탓인지. 적을 잃어버렸는지. 참 외로운 전쟁터 같군요.”

이우환(80) 선생이 2006년 파리에서 보낸 엽서에 쓴 글귀다. 수신인은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로 돼 있다. 요즘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진위 문제를 놓고 경찰과 정면 대결하며 작가 인생에서 최대 수난을 겪고 있어 진열장 속 이 엽서가 묘한 느낌을 준다.

단색화 인기가 국경을 넘어 해외로 확산하면서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해 서울 종로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전을 갖고 있다. 김달진 관장이 발로 뛰며 모은 도록, 포스터, 팸플릿, 전시기사, 사진, 단행본 등으로 꾸몄다. 작가의 체취와 고민이 담긴 엽서, 편지까지 나와 건조할 수 있는 전시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1세대 추상화가인 김환기 선생이 군에 간 제자(서양화가 신종섭)에게 화가로서 꿈을 잃지 말라며 원고지에 쓴 답신이 찡하다.

전시에선 1949년 서울의 동화화랑에서 열렸던 신사실파미술전에서 시작해 전후 미국과 유럽 등 서구 문화를 직중적으로 수용하며 전개되었던 추상미술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957년 미공보원에서 열린 현대미술가협회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에 반기를 들고 덕수궁 돌담길에서 전시를 열어 ‘벽전’으로 불렸던 1960년 미협전,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때문에 사실상 무산됐던 제2회 악뛰엘전 등은 팸플릿 뿐 아니라 ‘이슈와 사건’ 코너를 통해 당시의 전시 뒷얘기까지 전한다. 전시마다 박서보, 김창렬, 윤명로, 정상화 등 이제는 80대가 된 낯익은 추상화가들의 이름이 적혀 반갑다.

한국의 현대추상미술은 1960년대는 그룹전 위주였지만 70년대 들어서는 이우환 개인전(1972), 박서보 개인전(1973)에서 알 수 있듯 개인전의 시대로 진입했다. 70∼80년대 민중미술의 반격에 눌렸던 추상미술은 90년대 세계화 기치 속에 부활했다. 1992년 영국 리버풀 테이트갤러리에서 정창섭, 윤형근, 김창열 등이 초대된 그룹전 ‘자연과 함께’라는 전시가 열렸다. 2012년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의 단색화전’이 열려 최근 수년 사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는 단색화 인기 가도의 서막을 열었다.

전시 자료와 연구 성과물은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전시를 1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영구히 아카이브로 보존하려는 김 관장의 수집가적 덕목이 빛난다. 10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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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