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북에 살던, 촌티 팍팍 나는 청년 수도사 루터는 교황이 사는 로마 순례가 오랜 꿈이었다. 그는 로마에 머물면서 여러 곳을 다녔다. 기대한 것과 달리 로마는 종교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교회의 타락과 부패의 썩은 내가 진동했다.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은 세련되고 화려한 르네상스식 볼거리 문화가 덮고 있었다. 교황의 친족 등용과 성직 매매가 로마에서는 일상이었다. 루터가 머물던 로마의 수도원 수도사들은 교황청에 뇌물을 주고 성직을 얻은 사제들이 이렇게 신을 향해 기도한다고 한탄을 했다. “당신은 밥줄입니다. 언제까지 밥줄입니다.”
부패한 종교가 로마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일상 그 자체였고, 문화였다. 알프스 이북에서 온 청년 루터에게는 이 문화 자체가 충격이었다. 이때부터 루터는 교회의 부패와 싸울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루터가 이런 결심을 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이탈리아에서 로마 교황청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고발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을 보면, 지옥에서 단테가 로마 교황 니콜라우스 3세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단테를 만난 니콜라우스 3세는 한숨을 내뱉은 후 고성죄로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고백한다. 고성죄는 성물이나 성직을 팔아먹은 대가로 돈이나 물건을 챙긴 죄이다. 그러면서 자기 뒤의 보니파키우스 8세와 클레멘스 5세 두 교황도 고성죄 때문에 곧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저주한다. 니콜라우스 3세의 말을 듣자 단테는 분노에 차서 고성죄를 범한 교황들을 신랄히 비난하면서 이렇게 소리친다.
“우리 하느님께서 성 베드로의 손에 열쇠를 넘겨 줄 때 많은 보물을 요구하셨는가, ‘나를 따르라’이외에는 요구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신곡’ 지옥편 19곡)
단테가 신곡을 쓰던 시기는, 비록 교황의 권위가 예전과 같지 않지만, 아직 로마 교황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였다.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교황들의 탐욕이 오죽했으면 단테가 ‘신곡’에서 교황들을 고성죄로 신랄하게 비난한 후 줄줄이 지옥으로 보내버렸을까 싶다. 결국 단테는 교황 권력에 의해 추방되어 사랑하는 고국인 피렌체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라벤나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
단테가 탐욕과 고성죄 때문에 교황을 지옥에 떨어진 것으로 묘사했다면, 조토 (Giotto di Bondone)는 고성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고위성직자를 그려 놓았다. 그가 그린 스크로베니 성당 내 최후의 심판에는, 지옥에 떨어진 고위성직자가 등장한다. 쓰고 있는 모자를 보니, 대주교인 것 같다. 대주교는 지옥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지옥에서도 돈주머니를 받고 열심히 성직을 매매하고 있다. 단테나 조토 모두 다 종교개혁 이전의 인물들이다. 단테와 조토의 작품은 종교의 부패와 타락상에 대한 당시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런데도 왜 이탈리아에서는 진작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쓴 야콥 부크하르트는 이렇게 풀이한다. 그에 의하면, 알프스 이남 지역, 다시 말해 로마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이탈리아의 종교문화가 세속화될 대로 세속화되어 더 이상 개혁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년이면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지금 우리 교회는 어떤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교회도 돈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다. 돈과 관련해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교회는 끊임없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권력화되고 부패할 수 있다. 개혁의 시기를 놓치지 말자. 지금 우리는 알프스 이남에 살고 있는가? 알프스 이북에 살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지도자는 물론, 일반 신자들까지 더 늦기 전에 자신과 공동체의 자화상을 돌아보고 스스로 갱신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동희
◇약력=△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철학박사 △전 한신대 학술원 교수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동희의 종교개혁 500년] 우리는 알프스 이남에 살고 있는가?
입력 2016-07-08 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