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발표 시점에… 北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 유훈”

입력 2016-07-07 18:20 수정 2016-07-07 21:59

미국이 6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인권 범죄자로 제재 대상에 올린 것과 비슷한 시점에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비핵화의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한반도 비핵화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대북 제재 압박을 탈피하려는 북한의 의중과 미국의 추가 제재가 맞물리면서 향후 남북관계 역시 한층 복잡다단한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며, 김 위원장의 영도를 따르는 노동당, 군대, 인민의 의지”라고 강조하면서 미국과 한국 정부에 비핵화를 위해 5개항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북한의 요구사항은 남한 내 미국의 핵무기 모두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 및 기지 철폐와 검증, 미국의 핵 타격수단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는다는 보장,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이나 핵 불사용 확약, 핵 사용권을 가진 미군 철수 선포 등이다.

북한의 이 같은 성명에 대해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7일 “자신들은 대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상황 악화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려는 ‘명분쌓기’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이 북한의 최고존엄을 직접 겨냥한 이상 남북관계 역시 ‘강 대 강’의 대결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미·북 간 엇갈리는 시그널이 한반도 국면을 더욱 경색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미 남북관계가 더 나빠지기 어려운 수준이어서 급격한 정세 변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다만 북한이 중국과 ‘비핵화’ 관련 조율을 계속하면서 대화 의지에 대한 명분을 쌓고 있기 때문에 향후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 한반도 주변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의 더욱 신중한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중이 북핵과 남중국해 문제 등 역내 헤게모니를 건 ‘샅바싸움’을 계속하고, 북한이 이를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칫 우리만 한반도 프로세스의 주도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철저하게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장은 조평통 등 각종 단체와 기관을 경쟁적으로 동원해 대미 비난과 말폭탄을 이어가고, 무력시위는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실질적 대응을 아끼는 것은 8월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 때문”이라며 “훈련이 임박한 시점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동원한 중강도, 핵실험 등의 고강도 군사 대응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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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