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갑질’하는 입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 경기도 수원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시원한 뉴스가 들려왔다. 입주민들이 한여름 찜통더위에도 에어컨 없이 지내는 경비원을 위해 경비실에 에어컨을 달기로 마음을 모으고, 7일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소식이다.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이를 실현한 음향 엔지니어 신찬수(38)씨를 최근 만났다.
그가 경비실에 에어컨을 달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4년 전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다. “택배 물품 받으러 갈 때마다 경비 어르신들이 더위에 고생하는 걸 봤어요. 입주민들이 회원으로 있는 인터넷 카페에 제안하자 다들 좋다곤 했지만 실제로 이뤄지진 못했어요.” 온라인상의 뜨거운 반응과 막상 모금에 나서자 썰렁한 온도차에 놀랐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아파트 동 대표 후보자 모집공고가 났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동 대표를 맡으면 경비가 나오는데, 그걸 1년간 모으면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동 대표로 다시 제안해보고, 안 되면 그렇게라도 하자는 생각에 동 대표를 하게 됐지요.”
지난 6월 동 대표자 회의에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건의했다. 취지에는 다들 공감했지만 입주민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내 집에도 없는 에어컨을 왜 설치해주냐, 관리비 올라간다고 민원하면 어떻게 하냐는 의견이 많았어요. 다들 마음은 있지만 추진했다 욕먹을 수 있으니 하지 말자고 정리가 됐지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결 직후 ‘우리 동 경비실에라도 에어컨을 설치하자’며 모금을 제안하는 글을 써서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몇몇이 동참 의사를 밝혔고, 그러던 중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실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결국 동 대표자들이 다시 모여 5개 동 경비실에 에어컨을 모두 놓기로 했다.
신씨는 유치원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해 현재 안양평촌교회에 출석하는 집사다. “우리 사회에 갑을관계 문제가 너무 심각하잖아요. 경비원을 막 대하는데 그분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아버지 같은 분들이고, 어쩌면 제가 나이 먹어 경비원이 될 수도 있죠. 전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 없이 다같이 어우러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번 모금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기대와 달리 냉담한 데 실망했다. “교회 문패가 달려있으면 좀 다르겠지, 모금에 더 협조적이겠지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그렇진 않더라고요(웃음).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고, 소금 1%만 있어도 다르다는데 ‘갑을 문화’든 뭐든 잘 안 변하는 건 그만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트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교회는 다니지만 실생활에선 이 사람이 교회 다니는 사람인지 아무도 모르는 걸 보면 마음이 어려워요.”
그는 아내와 직원 2명과 함께 ‘하선 미디어’라는 음향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하선’은 하나님의 선물의 준말이자, 큰딸의 이름이다. “최근에 명함 뒷면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었어요.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게 부담되지만 욕먹지 않으려면 그만큼 더 잘해야 하잖아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는 평범한 크리스천의 작은 아이디어와 꾸준한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 앞장선 신찬수 집사 “갑질 판치는 세상에 예수 향기 퍼지길…”
입력 2016-07-07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