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존엄’ 직접 겨냥… 정치적 경고 의미

입력 2016-07-08 04:01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미군 주둔 문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다 생각에 잠겨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인권유린 혐의로 제재 명단에 올렸다. AP뉴시스
미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인권침해의 최종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재 명단에 김정은이 포함된 이유다.

북한 지도자가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미국이 특정국 지도자를 제재한 적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 훼손’ 등 다양한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인권침해만을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받는 지도자는 김정은이 처음이다.

애덤 주빈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대행은 6일(현지시간) 성명에서 “김정은 정권에서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재판 없이 처형되고, 강제노동과 고문을 비롯해 견딜 수 없는 잔혹함과 고난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재의 직접적 효과는 미미하다.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 동결, 입국금지, 금융거래 제한 조치가 취해진다. 미국과 북한의 금융거래와 인적 왕래가 전무한 상황에서 가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한 브리핑에서 “블랙리스트(제재 대상)에 오르면 전 세계 금융기관이 이들과 거래하는 것에 부담을 갖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제재는 미 정부가 김정은을 북한 인권침해의 총책임자로 지목하고 규탄하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미 정부의 다른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김정은이 인권침해에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을 인권침해 책임자로 규정한 근거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와 탈북자 증언 등을 들었다.

일각에서는 미 정부 내에서 김정은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킬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을 겨냥한 제재가 북한을 자극해 다른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중론과 인권침해 책임을 물어 제재해야 한다는 원칙론 사이에 결론이 빨리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 정부가 북한 인권침해보고서 의회 제출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발표를 미룬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른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제재 대상에 김정은뿐 아니라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인권침해에 연루된 사람의 이름이 고위급부터 중간간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대거 등장한 점을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최부일은 북한에서 자행되는 감시와 고문, 정치범 수용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조연준은 김정은의 뜻에 반하는 사람을 처형하는 데 앞장섰다는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한반도 정세가 현 세대가 끝나기 전에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북한에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심각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행위 조사와 형사처벌이 추진될 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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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