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인권침해의 최종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재 명단에 김정은이 포함된 이유다.
북한 지도자가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미국이 특정국 지도자를 제재한 적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 훼손’ 등 다양한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인권침해만을 이유로 미국의 제재를 받는 지도자는 김정은이 처음이다.
애덤 주빈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대행은 6일(현지시간) 성명에서 “김정은 정권에서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재판 없이 처형되고, 강제노동과 고문을 비롯해 견딜 수 없는 잔혹함과 고난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재의 직접적 효과는 미미하다.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 동결, 입국금지, 금융거래 제한 조치가 취해진다. 미국과 북한의 금융거래와 인적 왕래가 전무한 상황에서 가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한 브리핑에서 “블랙리스트(제재 대상)에 오르면 전 세계 금융기관이 이들과 거래하는 것에 부담을 갖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제재는 미 정부가 김정은을 북한 인권침해의 총책임자로 지목하고 규탄하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미 정부의 다른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김정은이 인권침해에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을 인권침해 책임자로 규정한 근거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와 탈북자 증언 등을 들었다.
일각에서는 미 정부 내에서 김정은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킬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을 겨냥한 제재가 북한을 자극해 다른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중론과 인권침해 책임을 물어 제재해야 한다는 원칙론 사이에 결론이 빨리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 정부가 북한 인권침해보고서 의회 제출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발표를 미룬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른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제재 대상에 김정은뿐 아니라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인권침해에 연루된 사람의 이름이 고위급부터 중간간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대거 등장한 점을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최부일은 북한에서 자행되는 감시와 고문, 정치범 수용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조연준은 김정은의 뜻에 반하는 사람을 처형하는 데 앞장섰다는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한반도 정세가 현 세대가 끝나기 전에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북한에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심각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행위 조사와 형사처벌이 추진될 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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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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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08 04:01